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치료를 위해 자가격리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했을까? 8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전염병을 역질, 질역, 여역, 역려, 시역, 장역, 온역, 악, 독역이라 불렀다. 이 중 역은 널리 유행하는 전염병이라는 의미로, 여는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으로 사용돼 왔다. 실록은 활인서(活人署)에서 출막(出幕)이라는 임시시설을 성 밖에 두고 감염병 환자를 이 곳에 격리해 돌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설에는 감염병 환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역병의 유행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오기도 했다. 병원과 같은 치료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양반들은 집으로 감염병 환자를 들여 돌봤다. 16세기 안동의 양반이었던 금난수(1530~1604)가 남긴 `성재일기(惺齋日記)`에는 감염병을 앓는 가족들을 치료하고 돌본 기록이 남아 있다. 1579년 3월 2일의 일이다. 세 달 넘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끝에 암자에 나가 있던 큰아들 금경도 병에 걸린다. 금난수는 말을 보내 금경을 데려오게 했다. 다른 아들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 감염을 조금이라도 막고자 했다. 금난수는 차도를 보이지 않는 남편을 직접 간호하겠다는 며느리를 만류한다. 하지만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비록 혼인을 한 지 1년도 안됐지만 그 마음과 정성이 너무나 지극했는지 간호를 시작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나면서 금경의 병세가 차도를 보인다. 금난수는 며느리를 곧바로 자신의 서얼 아우인 금무생의 집으로 가서 거처하도록 했다. 비록 병자인 아들의 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며느리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록에서 시아버지 금난수는 집을 자가격리 공간이자 치료 공간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집으로 들이고,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현대의학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감염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병자와 정상인 사람들을 격리함으로써 병의 감염을 막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여진다. 특히 감염을 염려해 며느리라고 해도 아픈 아들을 간호하지 못하게 만류하는 모습에서 금난수가 감염병을 대함에 있어 매우 이성적이고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권상일의 `청대일기(淸臺日記)`에는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거둬준 `대승사(大乘寺)`라는 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55년 12월 경상도 지역에 감염병이 기승을 부려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문경에 있는 대승사에 거지는 물론 양반과 상놈까지 모조리 모여들었다. 절에서는 이들을 각박하게 내칠 수 없어 대승사 승려들이 죽을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무엇보다 조선시대 백성들은 실체를 알 수 없이 갑자기 몰아치듯 다가와 생명을 앗아가는 역병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아픈 이를 돌보려는 인지상정은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늘 상존했다. 그러나 질병의 두려움 속에서도 연대와 돌봄을 통해 고통을 나누는 모습들은 수많은 기록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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