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반강제로 빚진 1300여만원을 우리의 힘으로 갚기 위해 벌였던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한 경주인들의 숫자가 50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에 대한 명단도 처음 공개됐다. 경주에서는 16일 국채보상운동 문서가 공개됐고 이 문서에는 1907년부터 1909년까지 경주지역에서 벌였던 국채보상운동의 참여 규모, 금액, 일진회장 김형달이 회장 최현식에게 보내 방해한 공함, 경주군수 효유문, 광고문, 대구서 받은 통문, 최부자 최준의 간찰, 재무 임천식 간찰, 경비분배기 등이다.  이 문서는 지난 2018년 경주 최부자댁 창고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동안 이 문서는 경주최부자민족선양회에서 해석하고 연구했다.  이 문서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그 가운데 경주의 마을 단위로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특징, 금액이 적힌 의연금성책 3권은 당시 우리 민족의 뜨거운 나라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 문서를 공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동방고전연구회 이혁 사무국장은 "문서를 풀어서 컴퓨터에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던 경주인들의 명단에는 참봉, 진사, 조이(과부), 아인(벙어리), ~의 첩, 무명인 등 개인의 신상을 표기돼 있다. 또 모금액 이동 비용을 분담한 경비분배기에는 양동이씨, 경주최씨를 비롯한 경주지역 66개 문중의 이름이 올라가 당시 경주 유림 전체가 조직적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한 자리 차고앉은 양반에서부터 미천한 신분으로 핍박받던 민중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바람은 한결 같았다. 우리 조상의 뜨거웠던 나라사랑을 되돌아본다면 사분오열 갈라진 민심을 추스를 길이 없는 오늘날의 세태를 반성하게 한다.  경주는 신라천년의 고도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어 우리 고대사의 중심지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돼 공개된 문서를 바탕으로 한다면 격동의 근대사에서도 결코 비켜 앉아 있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한다.  경주 최부자(최준)의 아버지 최현식이 100원을 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가 20전을 냈다. 금액의 과소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는 거대한 명분에 하나가 됐고 그 아슬아슬한 역사를 건너왔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뒤늦게 밝혀진 사료지만 경주시민에게는 뿌듯한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5000여명이 참가한 구국운동이라면 경주 지역민 대부분이 참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인들이 우리 역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면서 주요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앞으로 경주의 미래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도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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