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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문화칼럼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10월 10일
↑↑ 소설가 서유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창가에 앉은 그녀는 손에 든 커피를 홀짝이며 오가는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차이콥스키의 안단테칸타빌레가 흘러나오자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톨스토이가 눈물을 흘린 곡인데 이렇게 비가 고요히 내리는 날,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는 그녀도 울 수밖에. 그녀는 속삭이는 선율을 들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엽서를 보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바람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엽서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연애의 여정은 순조로웠다. 물론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는 진실했고 용기 있어 보였다. 이 남자라면 평생의 반려자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레이트샌디 사막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에 도착한 날 밤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잔디밭은 초원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별빛처럼 살아가리라… 그가 가만히 손을 잡았다. 그녀도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하늘에는 가느다란 키루스 구름이 하얗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말없이 구름을 바라봤는데 점점 어두워지는 표정을 그녀는 읽지 못했다. 이윽고 작심한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어쩌면… 이 밤이… 너와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몰라.
 그녀는 이상한 예감으로 섬뜩해져 속으로 반문했다. 어떤 마지막?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지 않았나. 의혹이 먹구름처럼 뭉글거렸다. 그는 좀 더 차분해진 음성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업이 돌이킬 수 없이 끝장나버렸다고 결기 차게 말하고는 자신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를 보자 그녀는 숨이 막혔다. 몸이 절벽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데 그의 말이 계속되었다. 나는 이제 능력이 없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이미 결심이 굳은 바위 같은 말이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 우리의 희망은 한갓 꿈이 되어버렸어.
 그녀는 그와 함께 한국 최초의 볼쇼이 발레학교를 설립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사업이 실패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희망도 아니었다. 용기를 내라고 하지 마. 넌 몰라. 뿌리가 뽑힌 나무는 더는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 잎을 낼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줄 수도 없어. 난 이제 사막으로 갈 거야.
 이제야 섬광처럼 떠올랐다. 어쩌면 그 고백이 그녀에게서 용기를 얻어 보려는 그의 마지막 노력이었을지도 몰랐다. 어떤 고난의 길도 그와 함께 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그가 마음을 바꾸었을까. 그는 희망을 잃었고 자신의 운명에 순종하듯 사막의 순례자로 나섰다. 그는 여느 실종자처럼 사막에 대해 방심하지도 않았고, 사막의 끝없는 능선을 상상하며 그저 아련한 낭만에 끌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소로 사막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버린 그의 마음을 원망했을 뿐, 사업에 실패했다고,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전쟁이 나면 어차피 끝장이라고 말하는 그가 겁쟁이로 보였다. 그녀는 생을 포기하려는 그의 면전에서 고난 받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다. 난민과 탈북자와 수용소의 이반 데니소비치와 이순신 장군과 유관순이 차례로 떠올랐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와 6·25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이 생각나자 안일한 그가 그답지 않아 돌아가길 결심했다.
 그런데 지금 막,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말이 들려왔다. 네가 어찌 그를 두고 혼자 돌아왔느냐? 그녀는 후들후들 떨며 마지막 엽서를 쓴 날짜를 확인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는 시차도 절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목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창자가 끊어지듯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연락을 기다렸다. 십분 쯤 지나 핸드폰이 울렸다. 사흘 전에 그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사막으로 떠났대요. 지금 막 구조 헬리콥터가 이륙했답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구 쪽으로 날아오는 헬리콥터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가 보였다.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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