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18-04-24 오후 09:47:3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칼럼

참을 수 없는 가우초 판사

소설가 서유진
문화칼럼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8년 04월 12일
↑↑ 소설가 서유진
중대한 판결 때문에 곤경에 처한 그 판사는 페레다 변호사 같은 사람이었다. 페레다가 누구냐면 로베르트 볼라뇨가 쓴 소설 '참을 수 없는 가우초'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흘려듣는 우리의 습성을 고려하여 볼라뇨의 권위를 잠깐 빌리기로 하자.
 1953년에 칠레의 산타아고에서 출생한 로베르트 볼라뇨는 어린 시절 읽기 장애가 있었다. 15세에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학교에 입학했지만 중퇴하고 다시는 교실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한 볼라뇨, 그는 서점 진열대에서 책을 훔쳐 읽으며 모든 것을 책에서 배웠다. 그가 쓴 작품의 제목만 봐도 의미심장하다. 1968년 10월 2일 수백만 학생이 학살, 투옥된 멕시코시티의 틀라텔롤코 대학살을 소재로 쓴 '야만스러운 탐정들','높이 나는 참새들','뜨거운 새', 225만 부가 팔린 '사랑을 다시 만들어 내기'를 쓸 때까지 볼라뇨는 바르셀로나에서 접시 닦기, 바텐더, 외판원, 캠핑장 야간 경비원, 쓰레기 청소부, 부두 노동자 등으로 생계를 꾸리며 시를 썼다.
 이후,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각종 문학상을 받는다. '낭만적인 개들', 가짜 백과사전식 소설인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대표적 야심작인 '2666', 죽음을 예견하고 원고를 넘긴'참을 수 없는 가우초'등을 출간한 볼라뇨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았다.
 자, 이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리의 판사에게로 돌아가자. 국가적인 중대한 재판을 두고 혼란스럽고 우울한 날을 보내던 그는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법학이 아닌 문학과 철학에서 법 정신의 기본적인 진리를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의 주인공 '페레다 변호사'에게 매료된 그는 작가 연보를 보다가 첫 페이지를 열었다.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청렴이 시대착오가 된 나라에서 청렴하기로 흠잡을 데 없는 변호사였다는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페레다는 판사가 될 기회를 잡고, 국회의원 후보에 올랐지만, 그는 주저 없이 법조계의 승진을 선택했다.
 3년 후 페레다는 법조계에 환멸을 느끼고―작가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떤 환멸인지 알 수 있다―공직에서 물러나 독서와 여행을 즐겼다. 그 시기, 어두웠던 아르헨티나 사회에 개혁이 일고 있었다.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고 혁명과 쿠데타가 잠잠할 즈음 페레다는 농장으로 들어가 가우초(라틴 아메리카의 카우보이)들과 생활한다. 3년 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긴 했는데 젊은 작가 패거리에게 모욕을 당한다. 그는 도시에 남아 가우초처럼 정의의 챔피언이 될지, 팜파스로 돌아갈지 망설인다. 결국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참아주는 팜파스(토끼밖에 없는 황량한 농장)의 가여운 사람들에게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한다.
 우리의 판사는 페레다처럼 농장으로 도망갈 수 없었다. 가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코앞의 일이 남아있었다. 페레다의 말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파리와 베를린이, 리옹과 프라하가 섞여 완벽한 조합을 이루듯, 이 나라에도 두 개의 세계가 섞여 있었다. 양편에서 날을 세우고 서로의 입을 바라보는 국민, 정치인, 언론, 모두의 입에 맞는 초콜릿(판결)을 먹여줘야 이 나라가 평안할 것이다. 페레다처럼 아, 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닌 이 코리아의 안락함에 젖어 내 목이 달아날까 걱정하는 것이라며 판사는 한탄했다. 말을 판 농장 주인이 페레다를 배웅하며 "무탈하시오" 하자 페레다가 대답했다. "하늘에 맡겨야지요"
 판사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눈앞이 환해졌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기에 무심히 흘려보낸 성경 구절이 생각난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이라는 푸른색 제목 아래 출애굽기 23장이 기록되어 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 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며,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않겠노라.

 거기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비가 내리고 떨어진 꽃잎이 소용돌이치며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세상이 침몰하고 있다 해도 공직에서 물러나 가우초로 살아갈 결심이 선다면 판결의 비난에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향의 황톳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대지를 적시는 봄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8년 04월 12일
- Copyrights ⓒ경북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칼럼
내 한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 
인간의 감정(感情)은 풍부하고 다양하다. 느끼어 움직이는 마음속의 .. 
여기서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하는 이 부분이 새로 들어온 .. 
삼재사상(三才思想) '천지인'은 하늘이 있고 땅이 있으며 사람이 있다.. 
이 땅에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후 여러 가지 변화 중, 가중 뚜렸한.. 
조직생활에서 정말 잘 안 되는 일 중 하나는 아마도 '보고 받는 자의 ..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고,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며, 이웃을 미워하는 .. 
내 고향 경주를 생각하면 애틋함이 앞선다. 내 유년과 청소년기를 온.. 
사설
기자수첩
인사말 연혁 조직도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본사 및 지역본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36,447
오늘 방문자 수 : 101,116
총 방문자 수 : 37,237,364
본사 : 상호: 경북신문사 / 주소: 경주시 황성동 1053-12 미림빌딩 5층 / 발행인·편집인 : 박준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현
mail: kbsmp@naver.com / Tel: 054-748-7900~2 / Fax : 054-773-7878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275 / 등록일 : 2008년 7월 1일
지사 지사대구본부: 053-794-3100 / 북부본부 : 054-859-8558 / 동부본부 : 054-284-4300 / 중부본부 : 053-444-2996~7 / 포항본사 : 054-275-7488
Copyright ⓒ 경북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