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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읽는 정치가

소설가 서유진
문화칼럼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8년 07월 09일
↑↑ 소설가 서유진
정치에서 몇 번이나 손을 떼고자 했지만, 운명은 이 정치가를 평화로운 은둔자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불평등한 세상에 분노했다. 청년 시절부터 그가 당한 숱한 시련의 삶은 볼테르의 삶과 흡사했는데, 금서처분과 투옥과 피신을 거듭한 볼테르는 65세에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를 출간했다. 

 그도 이제 당시 볼테르의 나이가 되었다. 볼테르는 8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파리시민의 환영을 받았지만, 그는 볼테르보다 20여 년 이른 나이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펼칠 기회를 잡았다.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그는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그가 실현하려는 숙원의 사업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에는 이 나라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끝없이 압박해오는 수많은 난제 앞에서 그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어느 날 그는 집무실로 나가지 못하고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몸살로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에 그의 무의식은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었는데, 혹독했던 과거가 떠오르자 회한이 밀려왔다. 벌써 자신의 생은 황혼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그를 우울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주던 낙관성이 비관적인 생각들을 몰아내어 주었다. 비관은 악마에 다름 아니며 희망을 야금야금 파먹을 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였다. 이때 그의 뇌리에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가 떠올랐다. 그는 볼테르가 지금 막 자신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는 환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그에게 소설을 추천한 어느 무명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였다.

 "이런 문장이 나와요. 문학적 가치가 없는 작품이 관객을 끌고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소설의 상황 한 두 개면 충분하대요. 하지만 문학작품이란 그런 것 이상이어야 하고, 새롭되 이상하지 않아야 하고, 항상 자연스럽고, 때로 숭고해야 하며, 인간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그의 얼굴을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며 무명작가는 애원하듯 덧붙였다. "외람된 말이지만, 저는 정치가도 마음이 숭고해야 하며, 인간의 마음을 깊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볼테르의 인생이 닮았다고 했을 때는 울컥,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볼테르가 누구인가? 루소, 몽테스키외와 더불어 계몽주의의 대표적 철학가이며, 시인, 작가, 비평가, 역사가로서 이름을 떨친 다재다능한 작가가 아닌가.

 볼테르는 투옥되고, 망명, 체포, 피신, 은거 생활을 거듭하면서도 부패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탄압은 끊임없었다. 이를테면 대귀족의 하인에게 구타를 당해도 귀족의 편에 선 정부는 그를 바스티유에 투옥했고, 자유 민주주의와 사상적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쓴 책을 프랑스 사회를 비판했다는 죄목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샤틀레 부인의 성으로 피신하여 10년 간 은거하며 집필에 몰두했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권위 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ncaise의 회원이 되었지만, 그의 위치는 여전히 위태로웠다. 샤틀레 부인이 사망한 후 그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의 시종으로 임명받아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러나 절대군주의 권력과 궁합이 맞지 않은 볼테르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군주의 심기를 건드렸다. 프리드리히 2세는 '오렌지 주스를 짜고 나면 껍질은 버린다'며 볼테르의 책을 베를린 광장에서 불태우고, 볼테르를 연금한다.

 루이15세에게 파리 귀환을 금지당한 볼테르는 어찌할 수 없이 제네바로 건너간다. 거기서 쓴 책들도 계속 금서목록에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스위스의 제네바와 프랑스 국경 근처에 있는 페르네 영지에 정착한다. 그 후 20년 동안 농사를 짓고 주민들을 돌보며 생활하지만,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펜을 꺾지 않았다. 72세에 쓴 '무식한 철학자'는 참수당한 '라 바르 기사(19세)'의 시체 위에서 함께 태워진다.

 '라 바르 기사의 죽음에 관한 진술 '로 볼테르는 또 다시 스위스로 피신한다. 그는 또,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편견으로 부당하게 사형당한 사람을 위해 사법계 전체와 외로운 싸움을 벌여 결국 복권을 받아내기도 한다. 84세에 신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부조리한 사회 비판을 멈추지 않은 볼테르였다. 루소에게 '루소의 자서전'이 있다면 볼테르에게는 '볼테르의 고백록'이라 일컫는 바로 이'캉디드 혹은 낙관주의'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 정치가의 얼굴은 열망에 휩싸여 발갛게 물들었는데, 어느 새 그는 책을 뽑아들고 있었고, 먼 역사를 거슬러 오르느라 눈이 지그시 감겨졌다. 볼테르는 약 28년 만에 파리로 돌아갔는데, 모든 시민이 볼테르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도 환호하는 군중 속에 서 있었다. 허공 한 점을 바라보며 그는 결연히 말했다.

 그래, 결국 파리시민들과 독자들은 볼테르를 이해해주지 않았나! 그는 책을 펼쳐 자신이 좋아하는 대목을 찾았다. 바로 이것이다! 트위터에 올려 사람들에게 전하리라, 생각하며 그는 컴퓨터 전원을 켰다.
 <정치가가 트위터에 올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8년 07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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