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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사행 점묘(使行點描)-(5)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 이준걸
역사이야기

경북신문 기자 / kua348@naver.com입력 : 2018년 09월 11일
↑↑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 이준걸
2. 조선과의 얽힌 고사와 일화-③
 일본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 상징물은 ①후지산 ②기모노(일본 전통 옷) ③스시(초밥) ④스모(씨름) ⑤가부기(歌舞伎·춤과 노래를 곁들인 연극)라고 한다. 이 외에도 전통의 미로 하카다(博多) 인형, 가면음악극인 노우가쿠(能樂), 분재, 유카다(浴衣) 등이 있다. 일본인들은 머리에 하치마키(머리띠), 어깨에는 다스키(어깨띠), 양 가랑이에는 훈도시(기저귀 모양의 천)을 조여야 힘이 나는 민족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도쿄 이야기'에 '교토는 입어서 망하고, 오사카는 먹어서 망하고, 에도(도쿄)
는 보다가 망한다'고 했고, 유곽과 가부기로 탐미적 분위기가 팽배하던 도쿄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보다가 망한다는 것은 연극, 벚꽃놀이, 스모와 화류계 등 3가지 구경거리를 말한다. 

 임진 왜란을 일으킬 때 왜 장수가 대마도 사람 다치바나 간넨(橘寬年)에게 도병(島兵)을 이끌고 선봉에 출전할 것을 명령했으나, 그는 "조선은 산천이 험하여 작전이 심히 어려우며, 후퇴 또한 용이하지 않으니 침공을 중지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대마도는 조선의 은덕으로 생을 영위하고, 비록 몸은 일본에 살고 있으나 목숨은 조선이 내린 것이니, 결코 배은망덕의 공격은 하늘이 망칠것이다"고 불복하였다.

 장수는 이 말에 의리는 가상하나 군정이 요란한데, 그 죄가 막중하다며 목을 베어 죽였다. 전쟁 후 조선 조정에서는 의당 그에 대한 포상이 있을 법한데, 여태까지 아무런 의식이 없으니 섬사람들은 섭섭히 여긴다고 일러준다.

 왜인들이 말하기를 오사카에 있는 요도가와(淀江) 기슭에 진주도라는 섬이 있는 데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잡아 온 사람들로 지금도 그 마을에는 다른 인종은 없다고 한다.

 임진 왜란 때 조선인 포로 일관(日官)은 왜인 가지모쿠(加治木)의 상인집에 억류되었는데 태수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임란 때 4진의 장수)가 일관의 뛰어난 인격과 박학을 듣고 그를 불러 소망을 물으니, 일관은 시부를 써서 주었다. '새는 나무 수풀에 살고 고기는 연못에 노니는데 가련한 이 신세는 어이타가 길을 잃고 오랑캐 땅에 와 있는고'라는 글을 써주었다. 이 글을 본 시마쓰 요시히로는 석방을 명했고, 일관은 그가 사귄 승 분시(文之·大龍玄昌)집을 찾았으나 부재중이라 기둥에다 '섬나라 박쥐'라고 써 놓고 돌아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통신사들이 오사카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된 가마며 많은 말들이 기다린다. 행렬의 선두는 막부에서 파견된 접반관이 맡고, 후미는 대마도 도주가 부축하고, 왜 관속들은 주위 경비를 담당한다. 운집한 구경꾼들의 떠드는 소리에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들은 양식까지 가져와서 노숙을 하면서 구경한다. 관사는 니시혼간지(西本願寺)로, 구조가 천여 간에 사절단 480명에, 왜 수행자 6백여 명을 합하여 천여 명이 이곳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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