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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사행 점묘(使行點描)(6)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 이준걸
역사 이야기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12일
↑↑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 이준걸
3. 책은 영물적 계시의 존재-①

 시가에는 서림(書林)이나 서옥(書屋)이 있으며, 옥호는 유지헌(柳枝軒)이니, 옥수당(玉樹堂)이라 적혀 있다. 고금 백가의 문적(文籍)을 모으고 책을 간행해서 돈을 번다. 우리나라 여러 선비들의 찬집(撰集)과 중국책이 없는 것이 없다.

 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 신유한의 '해유록'과 1748년 때 종사관 조명채(曺命采)의 '봉사일본시문견록'에 조선관계 문적(文籍)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에도시대 일본의 문인들은 조선의 시문집에 후서를 쓰고 제(題)·발(跋) 서문을 만들고, 서화에 제(題)했으며 조선 사람의 시를 낭송하며 여행할 때도 좌우에서 띄우지 않고 숙독완미(熟讀玩味·익숙하도록 읽고 그 재미를 음미함)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반 호서가들도 맑은 날에는 밭을 갈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 청경우독(晴耕雨讀)의 삶을 꾸려 왔다. 일본에서 책을 강독하며 내막까지 깊이 이해하는 것을 안광지배철(眼光紙背徹·눈의 정기로 종이 뒷면을 뚫다)이라고 하였다.

 사실 서적은 인위적인 물체에다 지향(指向)의 혼을 쏟아 넣은 것이므로 서적의 성질을 바르게 모색하여 구명(究明)해 이용하지 않으면 혼과 혼의 대화는 멀어져 어느 학문이고 당시의 지적하는 소이(所以)를 놓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올바른 지향의 정수(精髓)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래서 옛글은 가슴 속 용광로에서 끓이고 또 끓여 진국을 우려내야만 그 진한 맛을 알게 된다고 했다.

 당세(當世)에 있어서 조선의 대장경 인본과 유서(儒書)는 하나의 물질적인 서적이라기보다 무생물의 한계를 넘어 입 없이 말하는 신령의 형이상학적 영감의 주체, 정신종교의 보시(布施)의 주체로 숭앙 받아, 조선 서적의 욕구는 일본 국민들의 대물적 관념을 넘어 인격을 초월한 하나의 영물적 계시(啓示)의 존재로 선망의 신앙이 되었다.

 1643년 통신사의 부사로 간 조경(趙絅)의 '동사록'에 일본학자 하야시 라산(林羅山)이 조경에게 준 편지 겉봉을 뜯어보니 "오색구름 같은 다듬은 종이와 흰 무지개 같은 성모(猩毛) 명필이 해외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듯 누추한 제집을 훤히 비추고, 저의 눈을 뒤흔들어 앓은 사람이 용한 명약을 마신 듯 하였나이다. 저의 시병(詩病)은 고질에 빠져 낫지를 않으니, 만병통치의 장생약이 있는지, 있으면 청컨대 그 영묘한 약을 제가 나누어 병을 낫게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사절단이 유숙하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일본의 지식인 학자들이 연도와 관사에 운집하였고, 향응 석상 뿐 아니라 유숙하는 방에까지 들어와 면접을 간청하였다. 그들은 한시의 창수(唱酬)를 권하고, 서화 휘호를 얻고 시문의 증답(贈答)과 필담에 의하여 역사 및 풍습을 묻고, 경사제학을 문답하였다. 이렇게 유인(儒人)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액자·축물(軸物)·병풍 등의 서화를 구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 각 지방의 제후들까지 대마도 종가(宗家)의 알선을 의뢰하는 풍조가 만연되었다.

 막부에서는 조선 사람과 함부로 필담과 대화 및 서간 증답을 하게 되면 일본인의 불학과 무식이 드러나고, 부지(不知)가 탄로남으로 막부에서 국책으로 엄격히 규제도 해 보았으나, 사절들이 가는 곳마다 극성을 부리며 구름떼 같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한 편의 글, 한 폭의 그림을 얻는 것이 평생의 영광으로 여겼으며, 크나 큰 가문의 보물로 삼았다.

 1719년 신유한이 일본에 갔을 때 미야케 간랑(三宅觀瀾)이 여러 번 편지를 보냈는데 오랑캐 가운데서도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만나서 그는 '평수집(萍水集)' 수권을 보이면서 "조부 때부터 사신들을 접반하면서 수창한 시문을 모아둔 것이라며, 출판해서 후세에 전하려하니 책머리에 공의 한마디 글을 올리고자 한다"고 해서, 책 속의 글도 건전하여 기쁘게 서문을 지어 주었다. <계속>
경북신문 기자 / 입력 : 2018년 0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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