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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인물에게 여자를 배우다

소설가 서유진
문화칼럼

경북신문 기자 / kua348@naver.com입력 : 2018년 10월 11일
↑↑ 소설가 서유진
그는 자신이 성실한 남편이고 나름대로 아내의 가사를 잘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 초만 해도 아내는 자신의 불만을 에둘러 말하는 예의를 차릴 줄 알았다. 오히려 그 자신이 용건만 말하라고 다그치면 꼬리를 내리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주방으로 달아나는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여성의 가사노동 착취에 대해 언급하다가 그를, 아니 남성 전체를 몰아붙였다. 고사포를 쏘는 기세로 아내의 주장이 명절 문화로 조준되었다. 

 우리의 명절 문화는 옛날 농경시대의, 쌀밥도 귀했던 가난한 시대의 산물이라며 이 시대에 맞게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입을 삐죽거리며 냉소를 흘리고는 본격적인 비난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부모를 내버려두었다가 일 년에 딱 두 번 찾아오는 자식을 위해 노부모는 벌써 한 달 전부터 마음 설레며 시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무료통화가 흔하여 통화료 걱정 없는 시대에, 형제자매 간에도 전화 한 통화 오가지 않다가 하루 만에 반년의 회포를 푼다니, 멀리 있는 사촌은 옛말이고, 멀리 있는 형제자매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며 아내는 격하게 주장하며 은근히 그의 형제자매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흥, 명절에 두 번 얼굴 보이는 게 효도냐고 하면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노여움으로 뺨이 달아오른 아내의 눈에서 불꽃이 번득였다. 맏며느리로서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는 아내에게 위로나 감사나 사랑의 표현에 인색했다. 자신도 그 점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고개를 쳐든 딱따구리! 변해도 너무 변한 아내였다.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전적인 그 태도가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딱따구리의 부리를 싹뚝 잘라내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벌떡 일어섰다. 몹시 자존심이 상했고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느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공원 산책길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아내가 페미니스트가 된 것인가, 생각하니 목울대가 뻣뻣해졌다. 무심한 암청색 밤하늘은 인디언 블루 빛이 섞여 어둠을 어루만지듯 부드러워 보였다. 달빛이 따라오며 그를 환히 비추었지만, 그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오늘밤의 달은 최대로 부푼 보름달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고운 달도 풍요로운 달도 아니었다. 둥근 원 속에 아내에 대한 폭발할 것 같은 파괴의 에너지를 오롯이 채운 분노의 달이었다.

 결혼 전부터 그는 아내를 루나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루나는 라틴어 이름이다. 미소년 엔디미온을 사랑한 루나는 남편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엔디미온을 동굴에서 영원한 잠에 빠지게 하고는 밤마다 찾아가 50명의 딸을 낳았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리스 신들은 타락한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루나의 주제는 예술작품으로서 미화되었다지만, 목신(牧神) 판과도 관계를 맺은 루나를 생각하니, 이제는 아내에게 루나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루나에 대해 알게 된 시점이 아내와 다투기 바로 전날이었으니 아내에 대한 적의에 불을 붙인 셈이다. 그는 자신이 제우스처럼 여성 편력도 없고, 호색한도 아니며, 루나에게 불륜을 허락할 만큼 도량이 넓은 인간이 아니라면서, 루나라는 이름을 거두어들였다. 그때 불현듯 잠언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않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와 같으니라.

 그는 잠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비로소 찌푸린 얼굴을 펴고 키득키득 웃었다. 돼지코에 금고리라! 그는 누군가를 붙잡고 마구 야유를 퍼붓고 싶었다. 막힌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오려는 말, 그것은 같은 남자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직장 동료 중 민 팀장을 생각해냈다.

 과묵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만, 술이 한잔 들어가면 온갖 지식과 정보가 입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민 팀장에게 연락했고 공원 앞 호프집에서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민 팀장이 뜬금없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어 보았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장남 드미뜨리 카라마조프가 숭배하는 연인 그루센까를 빗대어서 했던 말, 기억나요? 

 ―여자에게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해주시오" 해봐라. 당장에 우박처럼 꾸중이 쏟아져 내릴 테니. 고개를 쳐들지 못하게 욕설을 퍼붓고, 있지도 않았던 일까지 주워섬기고, 모든 걸 하나도 잊지 않고 생각해내 가지고는, 거기다 자기 넋두리까지 덧붙여서 실컷 늘어놓고 나서야 용서해주게 마련이지. 그중 제일 낫다는 여자가 이 정도라니까! 있는 것 없는 것 모든 걸 박박 긁어서 사내의 머리에다 뒤집어씌우기 일쑤야. 여자들한텐 산 사람의 껍질이라도 벗길 수 있을 만한 잔인성이 숨어 있단 말이다.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의젓하고 훌륭한 남자라도 결국은 여자의 궁둥이 밑에 깔려서 살게 마련이야. 그러니 남자란 모름지기 관대해야 해. 여자에게 관대하다는 것은 불명예가 아니야. 영웅에게도 시저에게도 불명예는 아니야. (카라마조프 형제들 제4부 11편)

 여자에게 관대하라고?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민 팀장에게 반문했다.
경북신문 기자 / kua348@naver.com입력 : 2018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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