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란이란 초미의 관심사로 비등한 여론과 쌓인 원성의 뭇매는 동생 신말주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호를 귀래정(歸來亭)이라 하고 145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대사간에 이르렀다. 형의 무소불위로 인륜에 어그러진 몹쓸 짓을 하는 것을 보고 말렸으나, 선왕에 대한 배은망덕과 붕우의 믿음과 신의를 저버림에 멈추지를 않자, 벼슬을 버리고 순창에 내려가 귀래정을 지어 자연을 즐기며 욕심을 털고, 명예나 이익을 멀리하는 은자적 생활로 생을 영위하다 결국 전주부윤으로 임명되어 임기를 마쳤다.  고령부원군에 봉해진 신숙주에 대한 `고령탄`은 오언절구로 읊은 것이다. 세밀한 심리 분석과 행동거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와 그 영혼까지 위로하고, 가해자를 응징하며 불의를 고발하는 탄식조 운율은 문장의 중장함과 깊은 맛의 함축성, 진솔하고 재치있는 어휘 표현의 구사는 명미당 만의 학문세계에 감탄의 심연으로 함몰시킨다. 그리고 여기에다 구절마다 뼈가 있고 익살스럽게 비꼬면서도 품위 있는 영롱한 시어의 악부(樂府) 본문을 역하여 대충 윤색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생이 끝내 여기 그치고 마는가? 여기에 이르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다.  은혜를 입어 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은 높이 대광보국(大匡輔國·품계의 최고관) 영의정이 되었도다.  자손 수십 명은 한결같이 조정에 올랐으며, 집은 제일요지에 하사받고, 그의 사호(賜號)는 보한재라 일컬었다. 신선이 따로 있는 문 앞에는 창잡이들이 줄을 섰고, 후당(後堂)에는 거문고 퉁소 소리가 그칠 날이 없으며, 발걸음은 천상에서 걷는 것 같고, 침을 뱉으면 만백성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공덕은 백성을 덮고 문장은 오랑캐에 빛난다.  고대 광실 높은 집에 네모에 풍결 달고, 집안에는 계집종이 바쁜 걸음으로 설치고, 약탕관에는 탕약을 달이는 찬모는 다급하게 연신 부채질만 해댄다.  다섯 왕조에 여덟 성씨의 열한명의 임금(五朝, 八姓 十一君)을 섬겼다는 풍도는 아첨의 대명사이기는 해도,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53년 동안 권세를 누렸는데, 이제 겨우 여섯 왕 밑에서 기껏 37년을 보냈으니 아쉽기 그지없다.  하루 아침에 병이 드니 시의는 어약을 가져오고, 승지와 내시들은 베겟머리에서 어명을 전한다. 상공(相公·신숙주)의 병이 어떠하며 역질과 학질같이 심하지는 않은지, 또 상공의 병이 어떠한지 성주(聖主)께서 몹시 걱정하고 계십니다.  상공은 묵묵히 말이 없고, 하늘만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뿜는다. 인생이 끝내 여기 그치고 마는가?  진나라의 명의 곽경순(郭景純·일명 郭璞)의 `청낭록`을 볼 수는 없는가. 여동빈(呂洞賓)의 장생약을 구할 수가 없는가. 중국 명의의 대명사로 편작과 화타를 친다는데 알아볼 길은 없는가?  시시 각각으로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죽음의 그림자는 차차 다가오는데, 저지른 죄악을 풀어냄으로써 죽음의 저승길로 들어 갈 수 있고, 가슴 깊이 뉘우치고 한탄함으로, 죽음의 속박에서 조금은 풀리게 된다. 인과응보에 따른 죄업으로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객귀(客鬼)에서 벗어날 길은 정말 없는 것일까.  59년이 잘못이라 59년의 일들은 역력하고 다시 새롭구나. 이 새롭고 역력한 것은 상공(신숙주) 마음 스스로 잘 알리라.  22살에 진사에 합격하고, 23살에 장원이 되었으며 30에 중시(重試)에 급제하니 40에 판서에 올랐도다.  진정한 선비는 본시 남의 글을 본뜨거나 꾸어 씀을 허락받지 못하고 태어난 고독한 존재에다, 소신을 굽히지 않고, 주관을 관철시키는 숙명적 투사로, 외로움에 무릎 꿇지 않고, 어둠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대쪽 같은 금기의 연속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그만 현실에 갇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용렬한 기회주의에 편승하여 유취만년(遺臭萬年·더러운 이름을 먼 장래에까지 끼침)의 우를 범한 후회를 이제 와서 한탄한들 때는 이미 늦었구려.  30년 전을 생각하니 세종대왕을 만났을 때라, 세종은 대성인으로 선비 재사(才士)를 금옥같이 사랑하며 나를 집현전에 있게 하고, 또한 소신(小臣)을 호당에서 글을 읽게 하셨다.  수라간에서 반찬을 보내고 내부(內府)에서는 지필묵을 보내왔다. 내시는 임금(세종대왕)의 안부를 전하고 나인은 임금이 내린 술을 가져온다. 어주 너덧 순배를 돌리고 아악풍류는 그칠 줄을 모른다.  글과 술이 곁들인 담소의 잔치(문주담연)가 이어지며, 자연의 느낌으로 산은 산대로 있고, 글은 글대로 있는 것은 범인의 경지이고, 진정 선비의 경지에 다다르면 산을 보니 글이 보이고, 글을 보니 산이 보이는 경지에 다다러야 된다고 한다. 그러자면 문전지적(文典地籍)에 상통하는 백가구류(百家九流)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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