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증에다 예민하고 상처 잘 받는 양희 씨가 회식 자리에서 자부심도 자존심도 없다는 질타를 받았다. 평소보다 더 혹독하게 자신을 쥐어뜯으며 좌절감과 싸운 그녀는 네티즌들에게 물었다. 매사에 자신감 없고, 열등감이라는 갑옷 속에 몸을 숨기고, 자기비하와 자기학대에 위안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어떤 충고를 하겠습니까. 당신은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자존심이 강합니까? 이 질문은 깊이 생각할수록 즉답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요? 그 사람은 갑옷이 답답하고 무거워서, 때로는, 아니 언제나, 거북이나 자라처럼 머리를 내밀고 바다로 헤엄치기를 갈망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지금 깊은 우물 속에 빠져 몸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바라봅니다. 이 심연이라는 우물은 너무나 캄캄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습니다. 네티즌들이 즉각 반응했다. `힘내세요, 열등님, 그 닉네임부터 좀 바꾸시지요.` 이 댓글을 읽을 때까지도 양희 씨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댓글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자신을 사랑하겠어요?` 늘 들어서 무감각한 말이었고, 상투성과 진부함에 은근히 반발심이 들면서도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속마음을 까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정말이지 자신도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 말투며 웃는 표정, 매너, 집요함과 독선과 이기심과 감성과 남을 위한 배려, 오지랖, 기타 등등, 하물며 발뒤꿈치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철학자`의 비밀 댓글이 들어왔다.`저도 열등감이 심해요. 보통,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동시에 가진다고 해요. 늘 양가감정 속에서 혼란을 느끼지요. 나 역시, 내가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나를 짓누릅니다. 코가 삐뚠 것도 아니고, 수준 이하로 추남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미남 축에 든답니다. 게다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에,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내가 한심스럽다는 겁니다. 나는 자부심도 자존심도 없습니다. 요즘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는 순수하게 나를 낮추어도 아무도 진실하게 들어주지 않습니다. 나의 한계, 나의 고통을 아무리 호소해도 위로하거나 보듬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하소연을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나 통로로 본다는 겁니다. 자기비하는 겸손이라는 가면으로 치장한 인정욕구라는 겁니다. 나는 억울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내린 달란트는 공평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낮추고 그들을 올렸습니다. 나의 자기비하는 겸손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오해합니다. 겸손 떨지 말라는 겁니다. 나는 억울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나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아 억울하다는 마음 자체가 바로 남을 의식하는 인정욕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과장도 그렇게 말했었다. "양희 씨는 진짜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시절 줄곧 우등생이었다지요? 유명대학 출신에, 근평 일등급을 받고도 모자라요? 한쪽 가슴에 자부심을 얹어두고 마른기침을 해대는군요. 우리에게 무엇을 확인 받고 싶은 건가요?" `저도 자존심이 없어요.` 그녀가 썼고 조금 후 철학자의 글이 올라왔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너무 높은 곳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지요.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저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아스라이 먼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만 빠져있는 나는 타인의 존재는 염두에도 없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겠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지나친 언사입니다. 그러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대체 왜 나쁘다는 걸까요? 엎드려서 절 받는 비굴함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지나친 겸손과 자기 비하는 정말로 자존심이 없는 행동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철학자`는 앨리스 먼로의 책을 소개했다. 82세의 나이에 캐나다로서는 첫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2013년) 먼로의 단편 소설집 `디어라이프 Dear Life` 안에 `자존심`이라는 단편이 들어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언챙이)이 행운이라고 말했고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 밖에 나가면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전쟁을 겪고 페리호가 침몰하자 작중 주인공은 공포와 함께 묘한 감정을 느끼며 이렇게 술회한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고, 한순간에 나 같은 사람들이나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나 모두 평등해진다.` `혹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내가 그것을 때려눕히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도 좋게 만들 수 있다.`양희 씨는 `의지`에 대해 생각하며 `철학자`가 보내준 작별의 이모티콘을 보고 있다. 입언저리가 어색한 한 남자의 자존심…. 그녀는 조만간 `디어라이프`를 한 번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 자존심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휘발되어 흔적 없이 허공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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