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40~50년 전의 일이다. 마을에서 제법 범절을 지키며 살아가던 어른에게 손자가 태어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집안의 장손이었다. 3칠일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손자를 만나는 날이 됐다. 그 어른은 이른 아침 동네 목욕탕을 다녀온 후 고리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낡은 갓과 도포를 찾아냈고 다리미로 정성스럽게 다렸다.   의관을 정제한 어른은 손자를 찾아 아들집 문 앞에 이르러 헛기침 세 번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손자 앞에 좌정했다. 며느리가 손자를 안아 건네자 어른은 다시 옷깃을 여미고 정중하게 손자를 품에 안았다.  체면과 염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그 어른도 평소 입성은 평범했다. 농사지으러 논으로 나갈 때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는 모습을 보였고 마을 주막에서 이웃과 어울릴 때에는 집에서 입고 있던 평상복을 그대로 입고 나타났다.  그런데 그 어른이 손자를 맞이하는 의식을 치를 때 의관정제하고 나타났던 것은 우리 민족의 정서, 즉 예의와 격식을 중요시 여기는 관습을 제대로 지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전혀 반대의 상황이 최근 국회에서 벌어졌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분홍색 계열의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것이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류 의원을 옹호하는 입장과 비판하는 의견이 서로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류 의원에 대해 도가 넘는 비난도 쏟아졌다. "본회의장에 술값 받으러 왔느냐"는 것이다. 혐오와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들이 돌출하면서 이 문제는 앞으로 국회의 관행에 큰 영향을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류 의원 본인은 "본회의 때마다 중년 남성이 중심이 돼 양복과 넥타이만 입고 있는데 복장으로 상징되는 관행을 깨고 싶었다. 국회의 권위는 양복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옷을 입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류호정 의원의 파격적인 의상 선택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한 두 사람의 여성 정치인이 있다. 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다. 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류 의원이) 국회의 과도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깨 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의당 이정미 전 의원은 `뭘 입던 무슨 상관?`이라는 글을 통해 "21세기에 원피스로 이런 범죄에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한다니, 정말 이럴 때 기분 더럽다고 하는 거다"라고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나라 국회법에는 국회의원의 복장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류 의원의 복장에 대해 여론이 들끓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파격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03년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은 재보선에 당성돼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본회의장에 나타나면서 흰색 바지와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났다. 당시에도 국회는 발칵 뒤집혔다.  지금처럼 온라인이 활발하지 않았던 때라 그 논란은 국회에서 뜨거웠고 유 이사장은 그 뒤 정장 차림으로 국회에 출입했다.  류 의원의 복장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상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의 복장에 대해서 이처럼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과연 어떤 까닭일까? 류 의원의 정치적 입장을 반대하는 부류와 일간베스트라는 극우 사이트에서 주로 극단적인 발언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류 의원의 복장이 예의와 범절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됐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한 여성 국회의원의 복장 문제가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르는 우리의 정치 환경은 지극히 부박하다. 젊은 여성 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등원한 것에 대해 이처럼 갑론을박할 사이에 더 진중한 문제에 집착하고 정치인들에게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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