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과 10월 3일에 나훈아가 보여준 비대면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에서,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이 나라는 바로 오늘 여러분이 지켰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적이 없다"라는 저명 가수의 말이 명교수의 강의 말씀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요즈음 항간에 `테스형!`이 화재가 되고 있는데, 또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연설 도중에 흘린 김정은의 눈물이 회자(膾炙)되고 있어서 `눈물` 이 감성적 자극을 주고 있다.  인간이 지닌 고귀한 액체가 피와 눈물과 땀이라 하는데, 이 세 가지 액체는 때와 장소·장면에서 어떻게 흘리는 가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갖는다.  피는 충즉진명(忠則盡命)이라는 말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흘리는 마지막 액체로서 보국(保國)의 의미를 가지고, 땀은 열심히 일하며 흘리는 힘든 인내의 생산적 의미를 가지며, 눈물은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정서적 힘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남자는 눈물에 약하고 여자는 말에 약하다"는 말에서 정서와 관계됨을 알 수 있다.  눈물은 눈알 바깥면의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오는 분비물이다. 항상 조금씩 나와서 눈을 축이거나 이물질(異物質)을 씻어내면서 눈을 보호해 주고 있는데, 자극을 받거나 감동을 받으면 저절로 더 많이 나온다.   눈물은 흘리는 사람과 형태에 따라서 임금이 흘리는 옥루(玉淚), 구슬 같은 눈물, 닭똥 같은 눈물, 두 볼에 흐르는 눈물, 범벅눈물, 공항의 눈물(a tearful parting at the airport), 가식적 거짓 눈물 등으로 불러지고 있다. 울기를 잘 할 때 `눈물이 많다`라고 하고,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며 울 때 `눈물을 짠다`라고 한다.  어떤 자극을 받아 갑자기 눈에 눈물이 괴는 것을 `눈물이 핑 돈다`라고 하며, 눈물과 때, 먼지가 한데 엉켜 비벼진 상태를 범벅눈물이라 칭한다.   "좁은 골목길 사이 혼자 눈물, 누가 볼까봐 몰래 훔치는 눈물, 약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려다 내 눈물…" 등 노랫말에 나오는 눈물 등 눈물은 외침, 치정, 묵시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간만이 갖는 내면적 위력을 갖는 분비물이다.   첫사랑을 못 잊어 술만 취하면 흘리는 모양새가 좋다고 볼 수 없는 치정의 눈물이 있고, `자고로 남자가 눈물이 헤프면 큰일을 못한다`, `남자는 가벼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A man dosen`t lightly shed his tears.)`는 말처럼 함부로 흘릴 수 없는 고귀성을 갖기도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막힌 사연을 알 수 없고. 8·15 광복절에 남북 이산가족이 한 자리에 만나 혈육 간 별리의 아픔과 상면의 기쁨에서 한없이 흘린 눈물 등은 애환을 공감시킨 감명과 감동의 눈물이었다.   수많은 의미를 갖는 눈물이 요즈음 백년대한(百年大旱)이 된 듯 가뭄에 메말라지고 있어서 세상에 왜 이렇게 변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 눈물이 메말라진다는 것은 정서의 황폐화를 의미한다. 특히 부고(訃告) 메시지를 받고 장례식장에 가보면 상주들이 낳아 길러주고 가르쳐주며, 각종학교 교육시켜서 혼례 올려 준 부모의 별세(別世)에 대한 애통의 눈물을 흘리며 애곡(哀哭)하는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부모 별세의 아픔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하여 `하늘이 무너진 아픔`이라 하였고,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붕성지통(崩城之痛)이라 하여 `성이 무너진 아픔`이라 했다.  성은 튼튼한 방호벽인데 그 성이 무너졌으니 앞으로 닥칠 고난은 견디기 힘은 아픔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며, 아내의 사별(死別)에 대한 고통은 고분지통(叩盆之痛)이라 하여 `북을 두들기며 운다`는 중국 고사에 있는 아픔이며, 형제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 하여, 몸을 칼로서 반으로 자르는 가혹한 아픔에 비유하였는데, 이 고통들은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애통(哀痛)해야 할 인간의 기본 윤리·도덕적 자동눈물이다.  이런 눈물들은 마음속 깊이 저절로 나와야 하는 눈물인데 이런 눈물들이 세류에 밀려가고 눈물을 진정 흘릴 줄 모르는 동물적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으니, `코로나 19`가 형벌적(刑罰的) 반성을 경고하는 것 같고, `세상이 왜 이래` 하고 인간화의 교육에 선문답(禪問答)을 던지는 것은 당연한 같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0-11-24 오후 08:37:59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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