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개국했다.[중략] 이성계의 아들은 8명, 이중 6명은 첫째 부인인 신의왕후 소생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신덕왕후의 소생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형제간의 왕위 세력 다툼에서 다섯 번째 아들 정안군(이방원)이 왕위를 쟁탈하는 과정이 1,2차 왕자의 난이었고 그래서 조선의 3대 왕으로 방원이 등극(1400년 11월)했다.  이 후 역사는 또 흘러 1623년 서인은 능창군의 형이었던 능양군(뒤에 인조가 됨)이 김자점, 이귀 등과 함께 광해군을 몰아 낸 사건이 소위 인조반정이다.  이후 외교에 무능했던 조선의 16대 왕 인조와 서인정권은 이미 부패해서 기울어져가는 명나라의 정세에 무지한 나머지 명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후금을 멀리하는 정책을 하다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후금은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을 구실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이후 후금과 조선은 적대 행위를 하지 말자는 형제 관계의 화약(和約)을 맺고 돌아갔다.  이것이 1627년 정묘호란이다. 이후 세력이 더 강해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이라고 국호를 바꾸고 명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때 1627년 조선과 맺은 형제의 약속은 휴지통으로 들어갔고 청은 조선에 대해 다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맺을 것과 명의 공격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의 압력을 가하자 이에 조선이 거절, 이에 청은 1636년 12월(병자호란)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하였다.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했으나 이듬해인 1637년 1월 30일 결국인조는 청 태종 홍타이지 앞에서 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겪고 조선의 지배권을 청에 넘기는 조공 국이 되었다.  이것이 `이씨 조선개국 제1의 비운의 역사`라고 필자는 정의한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는 258년간 지속되다가 1894년 6월에 일어난 청일 전쟁에서 1895년 4월 일본이 전승국이 됨으로서 청국의 정권대사 이홍장과 일본의 초대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간에(1895년4월 17일) 11개의 강화조약이 시모노세키에서 체결되었고 그 첫 번째 조항이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유 독립국임을 인정한다는 강화 조약이 체결됨으로서 병자호란(1637년) 이후 258년간의 청나라 조공 국에서 해방되었다.  그 이후 15년 뒤 (1910) 이씨 조선은 완전 멸망, 일본에 합병되어 36년간의 식민지가 되었고, 청은 1912년에 멸망 지금의 중국으로 국호가 바뀌었다.  이러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미·영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일본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두 번의 원자탄 투하로 패망의 비운을 맞았으나 전후 75년이 지난 지금 세계 제2의 대국으로 다시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이씨 조선 518년의 역사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258년의 청나라 조공 국, 36년간 일본의 식민지 치욕을 겪다가 해방 이후 5년간의 이념 대립은 스탈린과 김일성의 합작품인 6·25를 촉발하게 했고 그들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중국을 이 전쟁에 개입하게 함으로써 피비린내 났던 동족상잔의 6·25는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67년 동안 휴전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제2의 비운이다` 이렇게 갈라진 북한의 김일성 일인 독재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상을 채택함으로서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빈민 국으로 전락했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경제 시장 원리를 바탕으로 세계 10위권이라는 무역 대국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어떠한가? 문대통령은 저 신뢰 할 수 없는 중국을 공동체라고 하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선 발을 빼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중국이 `3불(不)` 이행과 `사드철수`를 압박하는 것도 결국 한미동맹을 청산하고 중국의 영향권에 들라는 압박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롯데가 사드 기지를 정부에 제공했다 하여 중국 롯데 몰에 있는 제품들을 거리 한복판에 끄집어내어 포클레인으로 짓밟고 2017년 7월 시진 핑 주석은 우리 대통령의 면전에서 북한에 대해 사실상 `혈맹`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이 북한 핵 미사일 폐기나 한반도 자유통일 등에서 한국에 협력할 생각이 없다고 명백하게 천명한 셈이다.  그러면 "미국이 주도하는 주권평등을 전제로 한 자유민주주의적 국제질서 속에서 이루어낸 오늘 우리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더 이상 기대 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가 북한 핵의 볼모가 되어 과거 청의 조공(朝貢) 질서로 다시 되돌아가거나 제2의 티베트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번영을 위해 안보를 희생하면 두 가지를 다 잃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새삼 섬뜩하게 들린다"(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예비역 육군 중장의 말에서 인용).  시진핑 중국 공산당의 이런 사드와 유사한 망령은 지금 도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6·25 참전 당시 한국과 미국이 함께 시련을 겪었다"고 사실을 말한 것에 대해 중국관영 매체는 이를 보도하며 확산시키자 삼성전자 등 현지에서 BTS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한국 기업들이 광고를 내리는가 하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12일 "유명 글로벌 아이들 BTS의 정치적 발언에 중국 누리 꾼이 분노하고 있다"며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침략자였음에도 미국의 입장에만 맞춰 발언했다"고 완전 날조된 보도를 했다.  중국 역사 교과서에는 북한의 남한 침략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은 없고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고 왜곡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21세기 환태평양시대의 중심 국가로 다시 도약할 것인가? 제2의 조공 국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있다.  문정부의 친중(親中), 한미 동맹을 위협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그래서 종전 선언도 비핵화와 같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미국은 분명히 말하고 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말은 빼고 종전이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0-11-24 오후 08:37:59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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