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가 오랜 세월 동안 시의 주류를 이루고 지속적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건 시인들이 개성적인 감성으로 대상을 주관화하고 세계를 자아화(自我化)하는 시적 변용에 연유하는 것 같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 모습과 흐름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며 표현하는가에 따라 실제와는 다른 시의 세계가 빚어지게 마련이다.   그 주역은 바로 시인의 서정적 자아다. 이 자아는 대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내면화(內面化)된 대상, 시인의 감정이 이입되거나 투사된 세계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김종택 시인의 시 `겨울나무`는 `코로나 19`로 지쳐 있고, 찬 바람과 함께 다시 공포 분위기를 몰고 오는 이 역병(疫病)의 계절에 시인의 감정이입을 통해 `너 죽고 나 살자`는 이 시대의 삭막한 세태와 그 풍경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어 주목된다.   더구나 이 시는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겨울 추위를 감내해야 하는 식물(생명체)에까지 그 메시지를 확산하고 있다. 시인은 꽃도 열매도 잎사귀도 모두 떠나보낸 길모퉁이의 겨울나무에 따뜻한 마음 가져가 끼얹고 있으며, 그 마음자리에는 연민(憐憫)과 휴머니티, 그리움과 사랑, 비애 너머의 세상을 향한 꿈이 아름답게 깃들어 있다. 시 전문을 인용해 본다.   밤길을 걷다가/길모퉁이에 혼자 서 있는/나목(裸木)을 만났다   밤이 이처럼 깊도록 눕지 않고/빈 몸으로 서 있는 것이/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아/다가가 눈 감고 끌어안으며 물었다/비로소 나목이 입을 연다   평생을 베풀고 살았어요/열매도 그늘도 풍경도 주고 살았어요/기다리고 기다리며 살았어요/이 겨울이 가면 봄이 또 오겠지/떠나간 그 사람도 찾아오겠지/변함없이 살았어요/봄에는 꽃 피우고 가을이면 낙엽 지우고/참고 참으며 살았어요/온갖 수모 발길질 참으며 살았어요   그래도 겨울밤이 이렇게 깊어 가면/혼자 울어요/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독에/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따라갈 수 없는 슬픔에/혼자 이렇게 밤마다 울어요  다 듣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그래도 울지는 마/이 엄혹한 계절을 살면서/아프지 않은 생명 어디 있더냐/나무야 겨울나무야   시인은 밤길에서 마주친 나목에 인격(人格)을 부여해 말을 주고받는다. 밤이 깊도록 길모퉁이에 홀로 빈 몸으로 서 있는 나무가 외로워 잠 못 든 채 누구를 기다린다고 여기고 있으며, 끌어안으면서 무언의 소통을 한다. 나무가 말할 리 없겠지만, 입이 없는 나무의 `말 없는 말`에 걸맞게 눈을 감으면서 듣는(상상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 준다.   시인은 나무가 사람들에게 베푸는 덕목들을 두루 열거하면서 오가는 사람과 계절을 오직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온갖 수모와 발길질까지 참아내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홀로 소외된 채 겨울밤에는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겨울에는 베풀 수 있는 열매도 그늘도 풍경도 없어 사람들이 떠났지만 다시 봄이 오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고 사람들보다도 마음 넉넉한 인격체로 그려놓는다.   하지만 그 베풂과 기다림, 인내와 소외, 고난과 수모가 순전히 나무의 몫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환기시키면서 위무(慰撫)하고 위로한다. 엄혹한 계절의 아픔은 인간들의 세상이나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이기도 하면서, 역설적으로는 겨울나무에 빗댄 자성(自省)의 발언이기도 한 것으로 읽힌다.   진솔하고 소박한 구문과 서사적 서정으로 일관하는 이 시는 시인이 겨울밤의 한 그루 나목을 의인화(擬人化)해 연민과 휴머니티를 끼얹고 일방적인 베풂과 사랑에 대해 예찬하는 것 같지만, 엄혹한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수행하는 한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을 겨울나무(나목)에 비유해 표현하고 있다고 뒤집어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1-22 오전 11:07:24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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