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시기는 1942년 5월 이었으니, 이때는 아직 일본식민통치 때였으며 해방되기 3년 전이다. 태어난 곳은 내남면 화곡리 어련마을이란 벽촌 이었다. 경주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좁은 협곡이었다. 이곳에는 학원도 없었고, 훌륭한 훈장이 가르치는 서당은 물론 없었다. 증조부께서 후학을 가르치셨던 어련서당(魚淵書堂)은 세구연심에 소실되고 그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인 만5세 때 맏손자라 하여 할아버지로부터 특별히 천자문, 사자소학, 통감 등을 배웠다. 전날까지 배운 것을 전부 암송하고 뜻을 바르게 말할 수 있어야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열심히 암송하고 뜻을 반복하여 익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열심히 외웠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어서 정성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1000자로 구성된 천자문은 그 한 자(字)가 모두 의미 깊은 글자이지만 `효당갈력(孝當竭力)과 충즉진명(忠則盡命)`이란 여덟 글자는 더욱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이는 효(孝)와 충(忠)의 바른 뜻을 명료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효는 부모님께 마땅히 힘을 다해 섬기는 것이고, 충은 나라가 위난을 당했을 때 구국(救國)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효는 힘을 다하는 것이고, 충은 목숨을 바친다는데 그 차이점이 있다.   이미 이때부터 유아교육에 충효교육을 포함했다는 것이 예사로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충효교육이 있었기에 임진왜란에 백면서생이 향민과 나라를 위해 창의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충효교육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실한 인간이 되어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스스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인간형성의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효교육은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어떻게 요구되어 왔는가에 따라 동일하지는 않으나, 그 필요성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존속되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에 있어서는 더욱 강조되어야 할 교육이 충효교육이라 생각된다.   효는 자기 부모를 섬기는 것이다. 효사상이란 부자유친에 입각한 가장 핵심적인 인간관계에서 가정의 질서를 마련하고 그 다음으로는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그러한 체제를 이름하는 것으로 가장 인격적인 관계를 효라고 하였다. 효를 백가지 행실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인관관계에서 출발하여 국가사회에 언급하려는 것이 한국적인 효의 특색이라 하겠다.   충(忠)이란 글자가 `중(中)`과 `심(心)`을 합성한 것과 같이 자기 마음의 주체적 각성에 바탕을 두고 최선을 다하는 것(盡己)이라는 의미에서, 충이란 중(中)을 뜻하고 있으며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것으로, 내 자신으로부터 일어나서(興於身) 집에서 들어나고(著於家) 나라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완성되는 것이라 했다(成於國). 충은 그 실천면에서는 차원이 다를 수 있으나 실천의 이치는 같다고 본다. 충의 윤리는 자신의 지공무사한 성실성으로부터 추구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충이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부모까지 욕되게 할 수 있어서 효도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충신은 효자 문중에서 나온다"고 하였던 것 같다. 자기 부모를 섬기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나라에 충성할 수 있을 것인가. 가정의 화평과 화해를 가져오는 정신이 효의 사상이라면 국가의 화평과 화해를 가져오는 것이 충의 사상이다.   `논어`에 `마을이 어진 것은 아름다우니, 어진 마을에 살기를 선택하지 않고 어떻게 앎을 터득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라는 구절에서 보면, 마을은 시각적·외형적 마을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하나의 마을이라는 것이다. 앎을 터득하는 노력은 자기 자신의 이인화(里仁化)을 위한 노력 즉, 가장 가까운 자기 자신에서 출발되어 마을로, 국가로, 인류로 나아가는 화해와 친밀관계를 위한 외연적 이인화를 포함하는 노력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너와 나 사이의 물건적인 관계를 넘어선 애인(愛人)의 공동존재(共同存在)를 지향하는 뜻이 함의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상의 간략한 의미에서 볼 때 충효교육은 이웃 간의 삭막한 이기적인 정신적 벽을 헐고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이인화를 위한 교육이며, 그것은 또한 국태민안을 위한 전민적 애국교육이라 생각해 본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3-08 오후 12:47:47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3월 8일 기준
6
3
346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1대표이사 : 박준현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345(동천동 945-3) 경북신문 빌딩 3층  |  사업자등록번호 : 505-81-52491
편집·발행인 : 박준현  |  고충처리인 : 이상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문  |  청탁방지담당관 : 이상문   |  문의 : 054-748-7900~2
이메일 : gyeong7900@daum.net  |  등록일자 : 경북 가00009  |  등록번호 : 경북 가00009
대구본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22길 명문빌딩 6층 / 053-284-7900  |  포항본사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이로 9번길 24 / 054-278-1201
경북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바, 무단·전재·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