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여사 평생 이런 설은 처음이다. 조상님을 기리는 차례를 팽개치고 고양이 임종을 보러 갔으니! 결과적으로 조상님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셈이 되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지 못 하는 것이야 진작 이해를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편을 겪으며 전파 원인과 대처 방법에 수긍이 되어서다. 안 그래도 오기 귀찮아하던 동서들이 냉큼 방패막이로 세우는 것이 얄밉지만 어쩌겠는가. 옛 문헌에도 역병이 돌 때는 차례를 모시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며 우리도 생략하자는 말이 딱히 틀린 말이 아니란 것도 안다.  하지만 연연이 하던 전통을 맏며느리인 구여사까지 옳다구나 하며 빼먹을 순 없었다. 전염병과 무관하게 조상님은 찾아오실 터고 대접이 소홀하면 역정을 낼까 싶은 마음이 앞서서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느냐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차례를 준비하면 조상님이 굽어 살펴 주시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사실 구여사 속내는 따로 있었다. 조상님께 사정을 하고 싶어서다. 마흔이 다된 딸 배필을 찾아 주십사 어거지를 써 볼 참이다. 서너 해 전부터 딸은 숙부의 덕담이 거슬리는지 엄마 잔소리가 싫은지 명절에 오지도 않는다. 모녀 사이만 데면데면해지는 것 같아 자제를 하지만 손자를 보고 싶은 희망만은 버리지 못하겠다. 지금껏 가타부타 소식조차 없는 딸이 야속하여 구시렁대며 혼자 가자미 전을 끝내고 나물을 준비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딸이다. 혹시나 도착했으니 역으로 마중을 나오라는 말일까 하는 기대를 하던 구여사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전화기 저편에서 난데없이 쏟아지는 울음 때문이다. 그냥 우는 것도 아니고 통곡을 한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오란다. 고양이가 오늘을 못 넘기니 빨리 와서 임종을 보란다. 할머니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는 생떼에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 앞치마를 벗어 던졌다.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고 KTX 표를 예매하면서도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몸을 열차에 실고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딸 오기를 바라던 기대가 하릴없어지고 도리어 자신이 찾아가는 이 상황이 마뜩찮아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도시의 거리는 한산했다. 올해는 자식 집에 설을 쇠러간다는 역귀성조차도 드문 모양이다.  딸은 퉁퉁 부은 얼굴이다. 구여사를 보자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침대 가운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웠다. 딸 깨톡을 온통 도배하던 그 고양이였다. 평소 딸은 집에 와서도 하룻밤이나 잘까 말까하고는 혼자 있을 고양이가 걱정되어 가버렸었다. 뒤통수에 대고 엄마보다 고양이가 좋으냐고 실없는 질투도 해봤지만 고양이 따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했었다.   딸은 숨을 헐떡이는 고양이 한번 쳐다보고 구여사 한번 쳐다보며 운다. 벌개진 눈두덩이에서 피눈물이 묻어날 듯하다. 부모가 죽어도, 아니 제가 낳은 자식이라도 저보다 더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구여사도 딸을 안고 같이 울었다.   딸은 고양이가 불쌍하고 구여사는 그런 딸이 걱정되어서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팔년간 너에게 사랑받다 가는 것이니 그만하라며 달랬다. "엄마는 암에 걸려 죽는 내 새끼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냐!" 며 핀잔이다. 죽음을 앞둔 생명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애간장이 녹을만한 정을 끌어내라는 건 무리다. 마음이 상해 내가 여기까지 와서 뭐하는 짓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물색없이 화를 낼 계제도 아니었다. 더더욱 모른 척 돌아 갈수도 없었다.   "엄마가 잊지 않을 테니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 다시 만나자" 라는 딸의 기도가 어찌나 간절한지 또 눈물이 났다. 고양이가 숨을 거두고 준비해뒀던 관에 넣어 장례를 치루고 보니 이틀이 지나있었다. 의도치 않게 딸네 집에서 설을 쉰 것이다. 그제야 조상님들은 다녀가셨는지 어쨌는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동티는 내지 않았는지 오만 생각이 났다.  설이 한참 지난 오늘까지도 생각할수록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다. 시집도 안간 딸이 엄마라 자칭하는 것도 적응이 안 되는데 할머니니까 같이 임종을 지키자는 말에 달려간 자신이 납득이 안 되어서다. 생명에 무게가 있으랴!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같은 생명이다. `잘 보냈으니 됐다. 딸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안아줬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자`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도 어째 속은 것 같은 기분은 떨쳐지지가 않는다. 따져보면 있지도 않은 손자 장례를 치룬 꼴이다. 딸이 다음에는 또 어떤 손자를 만들어주려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제 고양이에게는 정을 안준다는데 그럼 강아지일까? 제발 도마뱀은 아니었으면 싶다.   "조상님요. 고양이 손자를 곁으로 보냈으니 이제는 진짜 손자를 보내 주이소. 동물 말고 사람 손자요" 이렇게 빌며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구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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