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람보다 위고 사람이 개 눈치를 보아야하니 원 참!"  오랜만에 만난 그는 대뜸 욕부터 했다. 그간 참았던 속내를 풀어내었다. 동네에서도 가장 끝 집에 그는 산다. 조상님 때부터 태를 가른 오래된 집이다. 산그늘에 가려 볕이 다소 아쉽기는 해도 대신 조용하고 공기가 좋은 이점이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하였다. 숱한 놀림을 감내하며 자랐지만 욕심내지 않은 소박한 살림에 만족하는 성품이다.   몇 해 전에는 손수 나지막한 정자 하나를 들여 별터라 현판도 달았다. 아낌없이 주는 친구가 좋은지, 자리가 그러한지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나도 몇 해 전에 글모임으로 알게 되어 서너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집 마당에는 개가 있었다. 평생을 홀로 사는 그에게 개는 챙겨야하는 식구였고 말붙임 하는 친구였으며 귀가를 당기는 구실이었다. 개는 온 마당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긴 목줄을 매어놨지만 집밖으로 벗어날 수는 없이 해뒀다. 밤으로 내려오는 산짐승이 혼잡을 못하도록 보초 역할을 부여하여 밥값을 하도록 하는가 보았다.   문제의 시작은 옆집에 사람이 이사 오면서였다. 단출한 세간에 비해 개는 세 마리였다. 이웃이 생긴다는 것이 좋아 살림 나르기도 거들고 시원한 물도 가져다주며 인사를 텄다.   그런데 그날부터 개가 짖는 통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낯을 가려 그러려니, 곧 적응하겠지 했는데 소리는 점점 심해졌다. 다음날 보니 개가 다섯 마리더니 얼마 안 있어 여덟 마리가 되었다. 그러고도 방에 또 있었다. 친척이 못 키운다 해서 떠맡았다면서 곧 입양 보낼 거라며 양해를 구하기에 참았다.   그 뒤에도 개가 출산을 하였다느니 아픈 개라 어쩔 수 없다느니 구실을 대며 마리수를 불렸다. 어떤 날은 켕켕 지르는 비명소리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남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개는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개가 다 따라 짖는다. 그런 날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이 들었다가도 놀라 깨기 일쑤고 전화조차 받기가 어려워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그는 자신의 개를 먼저 처분하고 말았다. 별터도 무용지물이 됐다며 한숨을 쉰다. 이뿐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짐승이 얌전하기만 할까? 엉성한 담장을 넘어 통제를 벗어난 개가 남의 집에 들어가 닭이나 오리를 죽이기도 여러 번이다. 개주인은 동네사람들 항의가 계속되자 도리어 싫으면 이사 가라는 적반하장 같은 대거리로 맞선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도 유만 부득이지!   무슨 이유에선지 길 군데군데 사료를 두기까지 한다. 몰려든 떠돌이개로 동네는 진짜 개판이 되었다. 차를 타지 않고는 무서워서 골목으로 나서지를 못할 지경이다.   그가 개를 좋아하는 옆집사람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배곯고 아픈 개를 먹이고픈 선한 바탕마음을 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 있다. 그의 푸념을 들으며 동네 사람들 다 등지고 개하고만 소통하는 삶이 진정 행복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에도 애완견 한두 마리씩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개 주인이란 말보다는 아들딸이라며 개부모되기를 자처한다. 물론 개인의 생각을 트집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갱년기 우울증이나 사춘기 반항으로 엉성해진 가족관계를 애완견이 채워 극복하는 사례를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개 역할은 거기까지다. 사람이 키우는 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리가 맞지 않을까 싶다.  흔히 상스런 소리로 개값 물어준다는 말이 있다. 이때 개값이란 아주 싼 값이거나 하찮은 가치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그것은 부잣집이나 대농가에서 모심기 같은 고된 일을 마친 일꾼에게 기력을 보충해주고자 기르던 개를 내주는데서 연유한다.   사람을 위하여 개가 희생되는 시스템이 억울할 것 같지만 가축이란 쓰임이 원래 그러했다. 소나 닭이 때가 되면 육시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지금도 가축이 제 명대로 다 살다 가기는 어렵다.   세월이 변하여 굳이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먹지는 않게 되었다. 가축과는 다른 반려동물이라는 명패를 달고 가족의 일원으로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개는 개일 뿐 사람보다 우선해서는 곤란하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남을 불편하게 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최소한 개를 사람보다 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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