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 속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연서같은 이 구절은 조지훈의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경주로 초대하는 목월 편지의 첫 문장이다. 목월이 근무했던 동부금융조합과 경주박물관은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담배 한 모금 태울 거리도 안 된다. 아마도 점심시간 때나 짜투리 시간에 박물관 뜰을 거닐며 시상에 잠기거나 산책을 했을 것이다. 당시 목월이 보았을 산수유나무는 현재까지 노구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잘 지키고 있다.  내력 있는 이 나무에 대해서 필자는 찾아갈 때마다 나름 목례를 올리거나 두 손 모으는 경배의 자세를 가지며 예를 다한다. 필자 또한 근무지에서 삼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보니 머리도 식힐 겸 가끔 들리는 은신처이자 마음 다듬는 위안처이기도 하다.편지를 받은 조지훈은 목월을 만나러 기차를 탄다.   `문장` 지면을 통해서만 알고 지내던 그들의 역사적인 만남은 1924년 3월 건천역에서였다. 봄비 보슬보슬 내리는 저녁 답 목월은 혹시나 못 알아볼까 봐 한지에다 `박목월`이라 적은 깃대를 들고 건천역 플랫폼에서 서 있었다. 이들의 첫 상봉 장면을 각자의 그림으로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흑백영화 속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감격적인 장면이 아니였을까 여겨진다.두 사람은 39년과 40년 한 해 사이로 정지용 추천으로 `문장`으로 등단한 공통점이 있다. 일제 말기 우리말 말살 정책으로 1941년 `문장` 잡지사도 문을 닫았고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지훈은 월정사에 머물다가 몸이 쇠하여 서울에 올라와서 건강을 챙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름만 알고 얼굴을 모르던 서로는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목월이 26살, 지훈이 22살이던 무렵이었다. 목월은 경주에 온 조지훈을 데리고 석굴암, 불국사, 왕릉들 그리고 멀리 옥산서원까지 둘러보았다. 독락당 대청마루에 누워 회재선생이 되어 보기도 하고 흘러가는 구름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편지에서처럼 박물관 뜰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산수유나무를 함께 바라보았을 것이다. 보름 가까이 시내 월성여관에 머물며 두 사람은 시와 문학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고도 경주에서 목월을 만나고 고향 영양으로 돌아간 지훈이 경주에서 고마움을 시로 전해 왔는데 목월에게 라는 부제가 붙은 `완하삼`이다. 목월은 잠 못 들며 이에 대한 답시를 썼는데 바로 `나그네`이다. 두 거장을 대표하는 시가, 아니 한국을 대표하는 시가 직, 간접적으로 경주를 배경으로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명작의 탄생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모양이다. 5연, 10행 동일한 구성의 두 사람의 시는 1946년 청록집에서 다시 수록되어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경주에서 첫 만남을 인연으로 두 사람의 우정은 오랫도록 지속되었다. 목월의 시집 `산도화` 발문을 조지훈이 쓰기도 했고, 목월의 수필중에 `지훈과 나` 에서도 첫 만남을 상세히 적고 있다. 그 무렵 사귄 시우(詩友)는 지훈이 유일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초고속 스피드시대, 우리들 주변 간이역이 사라져 가고 있다. 불국사역이 그렇고, 목월과 조지훈이 처음 만났던 건천역도 곧 사라질 예정이다. 경제성 논리가 우선시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1942년 3월의 하순 봄비 내리던 어느 날의 저녁 답을 기억한다면 쉽게 폐쇄하지 못할 텐데 씁쓸하다.   비록 역은 사라지더라도 경주문화원 정원의 산수유나무 만큼은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기원한다. 텅텅 속 비워내고 거죽 껍데기만 남은 나무는 올해에도 샛노란 잎 틔우며 코로나로 어수선한 봄을 맞이했을까? 경주문화원 산수유 나무에게 문안 인사나 한번 드리고 와야겠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4-20 오후 08:07:19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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