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소년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일하는 피그말리온 서점은 영어 독어 전문서점이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보르헤스는 퇴근하면서 서점에 자주 들리는 단골이었다.   어느 날 소년은 보르헤스로부터 `달리 일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책을 좀 읽어주지 않을래?` 라는 부탁을 받는다. 소년은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사년 간에 걸쳐 그의 집에 가서 책을 읽어주었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소년에게 행운과 영광이기도 했다. 세계적 유명 작가의 서재에서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년 알베르트 망구엘은 보르헤스의 영향으로 훗날 유명한 편집자이자 작가가 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독서가로 칭송을 받고 있다. 특히 독서에 관한 여러 편의 책을 저술했는데 모두 유명하다. `독서의 역사` `독서일기` `은유가 된 독자` `밤의 도서관` `책 읽는 사람들` `나의 그림읽기`등이 대표적인 책들이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보르헤스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 되었다. 어릴 적 보르헤스에 관한 좋은 추억을 간직한 그는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이라는 책을 썼다. 보르헤스라는 미로 속을 걸어 드는 사람들을 위한, 보르헤스라는 비밀스러운 고장을 헤매이는 꿈길의 기억이라는 서평을 통해 알 수 있듯 보르헤스를 찾아가는 책이다.   보르헤스는 유전적 영향으로 삼십대 부터 실명이 진행되었으며, 58세 무렵에는 완전한 실명에 이르고 말았다. 책을 좋아하는 그에게 실명은 치명적 형벌이었다. 보르헤스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책을 만지면 제목을 다 맞췄고 심지어 읽지도 않은 책의 이름까지 다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희미한 회색이거나 검은색의 세상인 그에게 끝까지 남아있었던 색이 노란색이었다. 때문에 노란색을 가장 좋아했고 노란색 넥타이를 즐겨 메고 다녔다.   보르헤스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변호사 아버지와 영문학자 어머니 영향으로 책이 가득한 서재속에서 자랐다. 문학과 독서는 자연스레 생활습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취미에 가까울 만큼 늘 백과사전을 끼고 살았다. 유년 시절부터 스페인어권과 영어권 문학은 물론 아랍과 북유럽 등 다양한 세계의 다양한 문학까지 접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하는 세계시민적 사유자가 되었다.   보르헤스는 20세기 후반의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 중 한 명이다. 초기에는 라틴 작가들만 어느 정도 인정하는 작가였으며 다수의 비평가들은 그의 문학에 대해 현학적이다, 수사적이다, 비인간적이다, 무미건조하다, 문학이 없는 작가다 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1950년대 이후 극찬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하였고 `보르헤스적이다` 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20세기 창조자`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 `환상문학의 창시자` `작가를 위한 작가` `사상의 디자이너`등 많은 수식어를 동원하며 그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보르헤스의 읽기 열풍이 한바탕 지나간 적이 있다. 오래전 필자가 제일 먼저 구입한 책은 `보르헤스의 불교 강의`였다. `아니 보르헤스가 불교를`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불교에도 박식했고 그의 문학을 한편으로 불교적 사유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독자들이 불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신은 그에게 육안(肉眼)보다는 심안(心眼)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었을까. 우리들이 모르는 은밀한 비밀을 엿볼 수 있는 문학적 능력을 주는 대신에 신은 그에게 눈을 빼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이를 대변할 수 있는 그의 시 `은총의 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절묘하신 신의 솜씨를 보라!기막힌 아이러니로 내게 책과 어둠을 동시에 주다니!` -`은총의 시` 일부  보르헤스는 문학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문학으로 가는 길은 보르헤스에게로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르헤스에게로 가는 길은 우주라고 부르는 무한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보르헤스 그의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을 하고싶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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