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 후춧가루는 같은 무게의 금가루와 가격이 같았다. 생산지 가격의 100배였다. 이슬람 세력이 실크로드를 점령해 후추의 육로 수입이 막히자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그러자 후추를 수입하기 위해 포르투갈이 바닷길 탐험에 나섰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책을 읽고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을 갖게 되어,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결국 인도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콜럼버스는 어릴 때부터 항해에 관심이 많아 10대 후반부터 아버지를 따라 직물과 포도주를 팔러 지중해 연안은 물론 아이슬란드까지 항해했다. 1474년 에게해 키오스섬에 유향 사러가는 항해에도 참가했고, 20대 후반에는 스페인 남부 마데이라섬으로 설탕 사러 간 적도 있었다. 이렇게 그는 어릴 때부터 해상무역을 하던 무역상이었다.  17년간 후원자를 찾아 헤매던 콜럼버스는 우여곡절 끝에 수도원장 마르티나 신부의 주선으로, 1486년 1월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을 처음 알현했다. 그는 여왕을 만나 탐험계획을 설명하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소개된 `대칸의 나라`를 찾아가겠다며 도움을 청했다. 이 장대한 계획은 특별 심사위원회에 올려졌으나,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처음에 여왕은 콜럼버스의 요구사항이 많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조세관리관 루이스 데 산탄겔이 자신이 탐험비용을 부담해도 좋다고 발언한 것에 자극받아 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이사벨 여왕은 자금 외에도 팔로스 시(市)로 하여금 선박 2척을 내주게 했다. 이 외에도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 선박 산타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했다.   마지막 난관은 선원 모집이었다. 저 넓은 바다 끝에 가면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에 배를 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의 요청에 따라 죄수가 승무원으로 지원하면 과거의 죄를 사면해 준다는 조건을 내걸어 승무원 모집도 거들어 주었다. 결국 콜럼버스의 끈질긴 노력으로 선원의 4분의 1은 사면 받은 죄수들로 채워졌다.  콜럼버스는 드디어 1492년 8월 3일 3척의 배에 120명의 선원을 태우고 출발했다. 콜럼버스는 1492년 12월 바하마제도의 구아나아니섬에 도착해 자신이 인도에 온 것으로 확신하고, 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 섬을 `산살바도르`라고 명명했다. `구세주`라는 의미다. 콜럼버스는 심한 해류 때문에 원나라 남쪽 인도에 도착했다고 생각해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사실 신대륙의 첫 번째 발견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 육로를 통해 2만 년 전에 아메리카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발견자는 바이킹족이었다. 그러나 서기 1000년경에 일어난 이 사건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인도(?)에 도착해 맨 처음 한 일은 후추(pepper)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섬을 돌아다녀 보아도 어디에도 후추는 없었다. 오히려 고추를 발견하고 이를 `빨간 후추`라 이름 붙였다. 이것이 바로 고추가 `red pepper`라 불리는 이유이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가 인도를 찾아냈다고 믿었다. 그의 이러한 슬픈 신념을 애도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은 그가 불렀던대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부르며, 그가 찾아낸 카리브해 섬들을 서쪽의 인도라는 의미로 `서인도제도`라고 불러주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인도하고는 전혀 상관없긴 하지만. 이처럼 현대의 이상한 지명은, 원나라를 인도와 혼동한 것도 모자라 엉뚱한 동네에서 인도를 찾으며 발생한 무지의 산물인 것이다.  그가 도착해 맨 처음 한 일은 돈이 될 만한 토산품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러 섬을 돌아다녀 보아도 어디에도 후추 같은 돈 될 만한 게 없었다. 그런 가운데 어느 섬에서 사금이 나는 걸 발견했다. 그 뒤 스페인은 금과 은에 집착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첫 귀환 길에 앵무새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동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뒤에도 신기한 동식물들을 많이 갖고 들어왔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그가 가지고 온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 토마토, 고추 등의 남미산 작물이었다. 훗날 바로 이 감자와 옥수수가 유럽을 기근에서 구해 주었고 고추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9-17 오전 09:05:33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9월 16일 기준
47
33
1,943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
1대표이사 : 박준현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345(동천동 945-3) 경북신문 빌딩 3층  |  사업자등록번호 : 505-81-52491
편집·발행인 : 박준현  |  고충처리인 : 이상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문  |  청탁방지담당관 : 이상문   |  문의 : 054-748-7900~2
이메일 : gyeong7900@daum.net  |  등록일자 : 경북 가00009  |  등록번호 : 경북 가00009
대구본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22길 명문빌딩 6층 / 053-284-7900  |  포항본사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이로 9번길 24 / 054-278-1201
경북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바, 무단·전재·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