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형상화(形像化)된 대상을 볼 뿐이다. 그런데 인간의 시각(視覺)이란 것이 대단히 넓은 빛의 스펙트럼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가시광선(可視光線) 영역에 국한되기 때문에, 자연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상 보다는 볼 수 없는 대상이 훨씬 많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까 뱀 같은 동물이 보고 있는 적외선 빛을 우리 눈은 인식할 수 없고, 나비 같은 곤충이 보고 있는 자외선 빛도 우리는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우리 눈은 해상도(解像度)가 그리 높지 못해, 밀리미터(mm)단위 이하의 크기는 형상 자체를 아예 볼 수가 없으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보이는 것은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의 일 부분일 뿐이라는 말이 진실인 것이다.  전자기학(電磁氣學)을 공부하면서 내가 늘 가졌던 의문, 아니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큰 의문 중에 하나가 바로 전자(電子)라는 존재의 형상인데, 단어의 의미대로라면, 전하(電荷)를 띈 한 개의 입자여야 되겠지만, 10억 분의 1미터에 해당하는 나노(nano) 단위 보다 더 작은 옹스트롬(angstrom)의 세계에서, 전자의 구체적 형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광자(光子)와 전자(電子)는 전혀 다른 존재일까? 아니면 같은 존재일까? 빛과 전자는 입자일까? 아니면 파동일까? 왜 아직까지도 물리학자들은 여기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과학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지는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며 노력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들기만 하는 것일까?   과학은 어떤 확증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양자역학(量子力學)이 말하는 불확정성은 우리의 사고(思考)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양자의 모습이며, 파동이지만 입자이고, 입자이지만 파동인 것이 빛이라는 얘긴데, 나는 우리 인류가 아직 초기 물리학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벌어지고 있는 형상화의 오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즉, 3차원 두뇌를 가진 우리의 잠재의식은 늘 존재하는 모든 것의 형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형상을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조차 기어이 형상화 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되고,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형상을 언어로 정의 하려는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양자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입자가 아닐 수 있고, 전자라고 부르지만 그것 역시 입자가 아닐 수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표현할 어휘가 없다하여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형상을 규정하지 못한다 해도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이성(理性)은 자연이 빚어낸 뛰어난 소프트웨어임에 분명 하지만, 차원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성이 언어에 갇히고 어떤 패러다임의 함정에 빠지면, 무지(無知)만도 못한 결과를 만들 수 있기에, 이성마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칸트(Kant)의 순수이성비판이 요즘 낯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증편향의 프레임에 갇히어 그나마의 이성조차 상실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끊임없이 자아관조(自我觀照)를 통해 이성을 단련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차원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한낱 우주 속의 바이러스와 같은 생명체로 끝나지 않을까?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 우리 모두가 프레임을 허물고 순수이성에 접근하기만 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은 한 순간에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릴 그런 형상 없는 형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09-17 오전 10:13:32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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