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끝낸 후 거울 앞에 서본다. 이때 언젠가 전시회장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문득 떠올랐다. 낡은 흑백 사진으로써 사진 속 여인은 머리엔 비녀를 꽂고 흰 무명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었다.   여인은 등에 업은 아기를 자신의 앞쪽으로 돌려 탐스러운 젖가슴을 드러내놓은 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나머지 가슴 한 쪽은 저고리 섶으로 가리지 않은 채였다.   이 사진을 보며 벌건 대낮 저잣거리에서 가슴을 온통 내놓았음에도 타인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여인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이 사진은 다름아닌 구 한 말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다. 그 때는 아들을 낳으면 집안에서 사내아이를 키운다는 명예 및 자부심(?) 때문에 아낙네의 젖가슴을 여봐란 듯 내 놓는 풍습이 흔히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의 가슴은 가문의 혈통을 잇는 아들을 기르기 위한 `어머니의 젖`으로만 받아들여졌다고 하니, 당시 남아선호 사상이 어떠했는지를 미뤄 짐작 할만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에겐 가슴이 여러 개 존재한다. 성감대인 유방을 비롯, 자애와 부덕을 간직한 여인으로서 가슴,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어머니 젖무덤이 그것 아닌가.   여인의 가슴은 흔히 남정네들이 생각하듯 성적 상징성만 내포한 게 아니었다. 모성애, 따뜻함, 안락함을 안겨주는 심리적 효과도 지녔잖은가.   삶에 부대껴 주저앉고 싶을 적마다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이 때문인가 보다.   어린 날 잦은 터울로 친정어머닌 아기를 낳았다. 이때 가족들 사랑을 동생이 독차지한 게 샘이 나서 밤마다 어머니 품속을 파고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걸핏하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느라 풀어헤친 어머니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곤 했었다.   요즘 코로나19로 바이러스에 대적하느라 두려움과 불안함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서인가. 새삼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이로 보아 사회적 환경도 여인 가슴의 유용성을 적잖이 필요로 하는 듯하다. 이렇듯 시대상이 여성 가슴에 민감하게 투영되는 것만 살펴봐도 여인의 몸은 신비하고 오묘하며 심오하기조차 하다.   또한 여인의 가슴은 `의상 사 衣裳 史`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단다. 시대를 들여다보면 여성의 가슴이 사회적 조류에도 편승 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인식할 수 있다.   전시戰時 등으로 세상이 불안하거나 경기 침체로 삶을 꾸려가기가 힘든 상황일수록 여성의 큰 가슴이 패션계에서도 한껏 부각돼 왔기 때문이랄까.  일례로 18년 여 년 전엔 일명 `실리콘 밸리`라는 양 가슴에 접착성이 강한 브래지어의 매출이 홈쇼핑에서 급등 했잖은가.   이 브래지어 특징은 양 가슴에 접착성이 강한 실리콘을 붙이고 가슴 사이를 여밈 장치로 붙이면 소위 가슴과 가슴 사이에 `계곡`이 생기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안정된 사회에서는 교양 및 지성이라는 덕목이 중시되어 여인네의 가슴을 감추려는 성향이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황의 그늘이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진 그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도 초반엔 국내 정치 및 북핵 문제, 이라크 전쟁 등 국제적인 갈등 양상이 여인의 `큰 가슴`을 선호하도록 부추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000년도 초반 여성들 마음을 사로잡은 의상을 보면 섹시미를 강조한 등선과 가슴의 계곡이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깊게 패인 옷이 유행했었다. 가슴 역시 당연히 C컵의 성형도 갈망했다.   그렇다면 시대상과 여인의 몸은 뗄 수 없는 불가분 관계란 말인가? 의문이 인다. 그럼에도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도 여인들은 자신의 섹시함을 한껏 과시하는 일에는 망설이지 않았으니, 그때는 덧 가슴이라 할 실리콘 덩어리를 가슴에 붙이고 떼어내는 일조차도 마다하지 않았잖은가.   이 현상만 봐도 여인은 자신의 미를 추구하는 데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하기사 클레오파트라는 임종 시에도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잖은가.  반면 안타까운 일면도 있다. 여성의 몸이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이용되는 게 그것이다. 1995년 프랑스 의사 도미니크 그로스는 `누벨 옵세르 바퇴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의 가슴으로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팔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일제 강점기 때도 벌어졌단다. 이 신문 기사에 의하면 1920년대 `중장탕`이라는 피부 미용 제품 광고에 한낱 그림이긴 하지만 가슴이 풍만한 전라全裸의 여성이 등장했다고도 했다. 일찍이 여인의 몸이 대량 생산 및 마케팅과 맞물려 상품화 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가슴이 지닌 생명은 섹시함인 듯하다. 언젠가 배우 윤인자가 주연한 1956년에 제작된 `전후파`라는 영화를 우연히 본적 있다.   이 영화에선 여배우가 비누 거품이 가득 찬 욕조에 앉아 젖무덤만 보인다. 그 당시 남성들은 침을 흘리며 이 장면을 보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만큼 순간 정신이 혼미했었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 있다.   눈만 뜨면 인터넷, 각종 영상 매체에서 여인들의 과감한 노출에 길들여진 현대 남자들에 비하면 그 시절 남자들은 매우 순진하다.  세 딸들을 모유로 키운 탓인가. 가슴이 작다. 나야말로 `실리콘 밸리의 덧 가슴 덕이라도 봐야 할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외형적인 겉모습보다 옹색해져가는 마음 그릇을 키우는 일이 큰 가슴 못지않게 진정 아름답다는 생각 때문이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10-24 오전 08:52:23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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