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마주치면 모를 뻔 했다. 더구나 마스크로 거진 반쯤 얼굴을 가렸잖은가. 하지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그녀를 용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반쯤 꺾인 오른쪽 팔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반색을 한다. 여태껏 홀몸이란다. 어느 때 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날 수척했던 모습과 달리 얼굴이 무척 좋아진 것만 미뤄 봐도 현재 여인이 되찾은 평상심을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녀를 처음 안 것은 수년 전이다. 동네 마트를 찾았다가 그곳 화장실 안에서이다.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볼일이 급해 화장실을 찾았다. 용무를 마치고 손을 씻을 때다.   곁에 있는 여인이 거울을 바라보며 `깔깔깔` 웃는다. 여인의 갑작스런 행동에 의아심을 품고 바라봤다. 하지만 여인은 나의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다.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거울을 바라본 채 그녀는 마냥 실없이 웃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쪽 팔이 안으로 굽었다.  처음엔 그녀의 행동이 괴이하여 재빨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여인은 대뜸 길을 막아선다. 돌발적 행동에 순간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은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느닷없이, "아주머니! 초면에 미안합니다. 오늘은 제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무하고나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라고 한다.  그녀의 말에 종전에 지녔던 경계심이 다소 느슨해졌다. 그리곤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어느 사이 여인에게 이끌렸다.   그리곤 `필경 무슨 사연이 있구나` 싶어 걸음을 잠시 멈춘 채 그녀와 마주보고 섰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다. 여인은 이런 나를 보자, "실은 20 여 일 전 제 남편이 세상을 떠났어요" 라고 한다.   아까와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담담한 어투다. 심지어는 눈빛까지 반짝이며 남편 죽음에 대하여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여인의 언행은 갈수록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심중을 간파한 듯 여인은 빠른 말투로 다음 말을 이었다.  "그 인간이 정확히 16년 3개월을 저를 폭행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떴답니다. 제 팔이 그때 부러져 이리 됐지요" 라며 자신의 안으로 반쯤 굽은 팔을 내게 내 보인다.   남편의 폭행 흔적은 이 뿐만이 아니란다. 남편이 살아있을 땐 허구 헌 날 얼굴이며 온 몸이 멍 자국이어서 성한 곳이 없었단다.  당시엔 남편이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경찰에 신고도 했단다. 그러나 경찰관이 집까지 찾아와선 그냥 돌아가기 일쑤였단다. 경찰관이 오면 그 시간만큼은 남편은 폭력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남편이 병사病死하자 비로소 폭력의 덫에서 벗어 날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이 때문인지 거울만 대하면 멍투성인 지난날 모습이 아니어서 자신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온단다. 그 당시 여인의 나이는 50대 후반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여인의 남편은 삼불출三不出에 속한다. 옛날부터 삼불출은 아내 자랑하는 남자, 아내 등 긁어 주는 남자, 아내 손찌검 하는 남자를 꼽았잖은가. 무엇보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는 특히 사나이로서 인정을 못 받았다.   선대 조상 제사나 종친회 행사에서 제외 당했다. 현대에도 여인에게 손찌검 하는 못된 행실의 남자들이 여전히 건재 하는 게 문제다. 남자가 아내에게 행하는 가정 폭력은 흔히 부부만의 문제로 치부하기 예사여서인가.   하긴 옛날부터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라는 속담까지 전해내려 올 정도다.  이로보아 조상들조차 가정 폭력을 정당화 시킨 게 아닌가 싶어 그 시절 남성권위주의 갑옷 폐해를 짐작할 만 하다. 아내는 남편의 화풀이 대상이 되려고 결혼한 게 아니잖은가.   아내도 엄연히 사람이다. 얼마든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왜? 걸핏하면 주먹부터 휘두르며 힘자랑을 하는지 도대체 남정네들 의중을 모르겠다.  언젠가 어느 기관에서 무려 8 백 명의 주부를 상대로 손찌검 질 조사를 해본즉, 결혼 후 남편에게 맞아본 주부가 42퍼센트란다. 하물며 1주일 간격으로 주례 행사로 얻어맞는 여인들도 있단다.   미국서 몇 십 년을 살다가 온 어느 여인의 말을 빌리자면 여존남비女尊男卑가 심한 미국에서조차 가정 폭력이 심각하단다.   미국 가정 절반이 넘게 완력을 행사하는 부부 싸움을 벌인단다. 미국 내에서 강도, 살인, 도난 등의 범죄로 경찰차를 부르는 빈도보다 가정 폭력에 의한 횟수가 더 빈번하다는 말도 여인은 잊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아내를 때리는 남편 수와 남편을 때리는 아내 수가 거의 같다고도 한다. 미국의 기혼자 약 39퍼센트가 남편이 아내에게 기물을 던지면 37퍼센트 아내 역시 이에 맞선다는 통계를 필자 역시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대한민국도 아내로부터 매 맞는 남편 이야기가 심심찮게 신문지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로보아 남자들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예전엔 아내가 죽으면 남자가 화장실에 숨어서 웃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으나,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다. 여자도 남편이 죽으면 실의에 젖고 애통해 하기보다 필자가 만난 여인처럼 화장실서 마음껏 웃을지 모를 일이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10-22 오후 05:36:59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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