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시피 이들은 나무 아래를 배회한 탓일 게다. 몇 몇 여인은 능숙한 듯 낙엽까지 헤쳐 가며 연신 줍는다. 웃옷 양쪽 주머니가 불룩하리만치 제법 많이 주웠다. 비닐봉지가 넘치도록 주운 남자도 있다.   비닐봉지를 든 남자가 나무 밑둥을 냅다 걷어찬다. 힘이 얼마나 센지 수령은 족히 몇 십 년은 됨직한 굴참나무 가지가 흔들리더니 품에 끌어안았던 열매를 `후두둑` 땅 아래로 떨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남자는 재빨리 도토리를 줍는다. 집 앞 호숫가를 조깅하다가 어제 수변 가 숲 속에서 보아온 정경이다.  그러고 보니 초로의 남자는 낯이 익다. 평소 그는 이곳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본 적 있다. 지난 늦가을엔 녹색 조끼를 입고 이곳 호숫가에 생장하는 나무들에게 짚으로 된 보호 재를 둘러주던 남자가 아니던가. 그때는 나무들의 월동 준비를 철저히 해줄 양으로 짚 이엉을 몇 겹이고 나무마다 꼼꼼히 동여매곤 했잖은가.   당시 이곳으로 운동을 나올 때 수변 가에 자라는 나무마다 짚으로 된 이엉을 둘러주던 인부들을 목격했었다. 유독 이 남자를 기억하는 것은 인부들이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 무리에서 홀로 빠져나와 막걸리를 굴참나무 아래 쏟아 붓는 것을 우연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난날을 들추는 것은, 남자의 표리부동한 행동 때문이랄까. 그때는 "나무야! 너도 얼마나 힘들었느냐? 모진 비바람과 동장군 설풍雪風에 견디려면 막걸리 한 잔 거나하게 마시렴" 이라며 다정하게 말까지 걸면서 나무에게 막걸리를 권했던 사람 아닌가.  그의 지난날 나무를 따뜻하게 보호해주던 태도가 돌변했다. 도토리를 주워서 자신의 뱃속을 채우겠다고 굴참나무 아래까지 샅샅이 뒤진다. 이것도 부족해 심지어는 나무에게 발길질까지 해대잖은가. 갑자기 굴참나무가 어리석다면 지나칠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에게 자신이 지닌 것을 아낌없이 나누잖는가.  나무는 참으로 덕德이 많다. 여름이면 푸른 잎을 피워 그늘을 드리운다. 수많은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도록 자신의 품을 한껏 내어주기도 한다. 또한 인간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생활용품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잖은가.   건축 자재에 나무가 빠질 순 없다. 가구, 펄프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인간에게 자신의 몸을 기꺼이 헌신한다. 오염된 공기도 정화 해준다. 홍수도 막아주잖은가.   나무는 이렇듯 혼신의 힘으로 인간에게 자신이 지닌 것을 전부 내어주는 일에 추호도 망설임이 없다. 그리곤 가을이면 훌훌 잎을 벗은 채 겨우 내내 나목이 되어 모진 삭풍朔風을 용케 견뎌낸다.   희생과 헌신을 감수 하는 모습이 비범하기조차 하다. 우린 어떤가. 이기적이고 욕망 덩어리가 아니던가.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선 타인 밥그릇까지 넘보는 것은 물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상대방에게 등 돌리기 일쑤다.   그러나 나무는 배반을 모른다. 배은망덕 하지도 않다. 햇빛, 비, 바람에게 늘 감사해 하는 겸양도 갖췄다.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무성한 이파리를 간직했다가 가을이 오면 자신의 한 해 결실인 낙엽, 과일, 열매 등을 남김없이 자연에게 되돌려준다.   감이나 도토리, 밤 등을 땅에 떨어트려 산짐승 먹이나 인간의 먹거리를 제공해 주는 게 그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을 오롯이 되갚는 일에 충실하다. 그래 나무는 마치 성자와 같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 채 묵묵히 폭풍과 맞서며 부러질지언정 결코 굽히지 않는다. 선비 기질까지 갖췄다. 아무리 인간이 나무의 온몸을 베어내도 이에 항거하지 않고 나이테로 연륜을 드러내어 겸손하다. 봄이 오면 찬란하게 꽃을 피워 자신이 지닌 독특한 향기와 아름다운 꽃을 만천하에 알리면서도 결코 뽐내지 않는다.   새삼 굴참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해본다. 남이 베푼 배려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진 않았는지, 신의信義를 저버린 적은 없었는지, 젠체를 한 적은 없었는지 절로 손이 가슴으로 가는 것은 어인일일까. 잃어진 인간성 회복에 대하여 비로소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허욕과 오만으로 가득 찬 마음 그릇을 비워내고 헹구면 진정 인간다운 면모를 제대로 갖출 수 있을까?` 밤마다 마음의 일기를 가슴에 수없이 써 보지만 실은 그 순간뿐이었잖은가. 가슴 속 오욕칠정五慾七情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혼탁한 마음이 정화되길 바라며 욕심 주머니를 털어내려 애쓰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은 여전히 몸집을 비대하게 키워만 갈 뿐이다. 심연 깊숙이 욕심 보따리를 야무지게 쟁여두면서 미처 나무에 대한 경외심은 염두에 둘 생각을 못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월감에 젖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난히 볕이 고운 가을 어느 날, 굴참나무를 바라보며 이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하고 자신이 부끄럽다.
즐겨찾기+ 최종편집:2021-10-22 오후 05:36:59 회원가입기사쓰기구독신청지면보기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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