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 송라면은 최북단에 위치한 북쪽 관문으로 `송라(松羅)`라는 이름처럼 해송이 곳곳에 펼쳐진 동해안과, 경북수목원, 내연산 군립공원의 천년 고찰 보경사, 3·1운동 역사의 현장 대전리 등 인구 2500여 명의 작지만 유서 깊은 스토리가 속속 스며들어 있는 지역이다. 이 곳 지역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역면`으로 편제되었다. 1906년 `내북면`으로 불리다 1914년 많은 속역을 거느렸던 `송라역`에서 이름을 따 `송라면(松羅面)`이라 했고 북동쪽은 동해로 열려 있다. 북쪽은 영덕군 남정면(南亭面), 북·서쪽은 죽장면(竹長面)·신광면(神光面), 남쪽은 청하면(淸河面)과 접한다. 송라면은 동해안 전역을 커버하는 7번국도가 남북으로 관통, 교통이 편리해 사람과 물동량이 풍부한 곳이다. 내연산과 12폭포, 보경사, 화진해수욕장 등 산과 바다를 품은 포항관광 1번지 `송라면`을 살펴본다. ◆ 겸재 정선도 반한 진경산수화 `내연산`   내연산은 원래 종남산이라고 불리었는데, 신라 진성여왕이 이 산에서 견훤의 난을 피한 뒤 내연산이라 개칭 되었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크고 작은 세 개의 바위가 있는데, 손가락으로 밀면 움직이나 두 손으로 밀면 꿈쩍하지 않는다.  요즘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글이 등장하는데 변변한 이동수단도 없던 당시에도 이토록 깊은 산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 유명한 명승지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로 이름이 높았던 겸재 정선은 청하현감 재직 시 `내연산`을 금강산에 비견될 만큼의 절경이라며 화폭에 즐겨 담았다고 한다. 1733년 내연산 기슭에 올라 `내연삼용추도`를 그렸다. 도끼로 쪼는 듯한 강렬한 필묵법으로 갑천계곡의 강렬한 물소리까지 스케치 한 듯 역동적인 붓 터치가 일품인 작품이다.   그는 이듬해인 1734년 겨울 생애 최고의 역작인 `금강전도`에 이어, 1735년까지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청하 고을의`청하성읍도`와 내연산의 비경을 담은 `내연산폭포도`, `고사의송관란도`등의 작품을 남겼다  산기슭 물길따라 이어지는 12km의 계곡에는 기생을 데리고 놀다가 절벽아래 물속에 떨어져 죽었다는 기화대,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일대·비하대, 신선이 타고온 학의 전설이 있는 학소대 등 기암괴석 사이로 상생폭포, 보현폭포, 무풍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 등 12폭포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각각 형태와 전설을 간직한 채 자리한다.   그 중 가장 웅장한 연산폭포 주변 절벽에는 광해군 형조판서 유숙과 겸제 정선 등 이곳을 찾은 명사들의 이름과 시구가 새겨져 있어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더불어, 지난 2015년 해발 298m 암봉에 전통 8각정자 모양의 내연산 `선일대`에 이어 2018년 선일대 맞은편 깎아내린 듯 한 절벽위에 마치 UFO 비행접시처럼 보이는 `소금강 전망대`가 설치돼 자연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스카이 워크형식으로 짜릿한 체험까지 지역 관광의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내연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하는 `보경사`는 신라시대 지명법사가`도인에게 전수받은 여덟 면의 거울을 땅에 봉안하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와 외세의 침략를 막고, 삼국을 통일하리라.`하자 진평왕이 크게 기뻐하며 신하를 거느리고 동해안을 올라가다 오색구름이 있던 내연산 아래 8면경을 묻고 못을 매워 적광전을 지어 `보경사`라 칭한 것이다. 현재 보경사에는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와 부도(보물 제430호)등의 보물이 보존돼 있다.   내연산 군립공원과 보경사 주변은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현재에도 경상북도 3경 및 포항 12경에 포함 될 정도로 빼어난 경치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입구 식당가에서는 할머니들이 직접 홍두깨로 밀어서 만든 손칼국수와 도토리묵, 산채비빕밥, 더덕구이 등 무공해 지역임산물로 정성스레 준비하여 산행의 허기를 채우기 충분해 TV맛집 프로그램에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뷰(Viwe)맛집 `화진해수욕장` 그리고 바다를 빗질하는 해안선  송라면 해안선을 따라 고급스런 카페와 가족동반 및 젊은 층이 선호하는 펜션·풀빌라 등 80여개 숙박업소가 여름피서객을 맞이한다. 송라면 하면 물이 맑기로 유명한 `화진 해수욕장`을 빼 놓을 수 없다.   화진해수욕장의 백사장의 길이는 400m, 둥근 자갈이 섞인 사빈으로, 모래사장의 가장자리에는 솔숲 그늘이 깊어, 최근 차박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화진리 부터 해풍에 살짝 고개를 젖힌 솔숲은 방석리 지나 조사리까지 은근하게 연결돼 `조사리 솔숲`은 아는 사람만 찾는 숨은 명소이기도 하다.  조사리는 고려 우왕 때인 1379년 원각 조사가 태어난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설화에 따르면 원각 조사는 천신에 의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용왕의 막내였다고 한다. 자식을 찾아 헤매던 용왕부부는 결국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조사리 마을 초입에 용암이 서 있다. 길을 내면서 암용 바위는 사라졌고 지금은 수용 바위만 남아 있다. 용왕의 아들은 지상에서 성인으로 존경받으며 81세의 유월 보름날 열반에 들었다. 이후 제자들은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고, 그것은 지금 조사리 북쪽의 숲속에 감춰진 듯 자리한다.◆ 경북도내에서 가장 먼저 3.1운동을 일으킨 `송라면 대전리`  송라면은 말이나 무늬만 호국인 지역과 질적으로 다르다.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배의 총칼에 맞서 맨몸뚱이 태극기 하나의 의기로 분연히 들불처럼 일어나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천명했던 3·1운동을 경북도내에서 가장 먼저 일으킨 포항 그 중심에 송라면이 있었다.   당시 송라면 작은 마을인 대전리는 전국에 유래 없이 14명의 구속자가 발생한 독립지사의 지역이라 하여 한때 `만세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에도 국내외망명 등 독립운동을 이어왔으나 그 여파로 일제의 핍박과 감시로 소외되기도 했다. 의거 70년이 흐른 1986년에서야 3·1의거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또한, 독립지사의 유물 180여 점을 모아 2001년 송라면에 `대전리3·1의거 기념관`이 건립되고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게 되었다. 그 뜻을 이어 대전리 만세광장에서 매년 3월 1일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 호국에 따른 크고 작은 희생으로 국난 극복의 큰 발자취가 남겨진 송라면  1945년 해방 후 남북한의 오랜 대치상황은 송라면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어 가던 대한민국은 북한과 내통한 공산 게릴라 공비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6·25동란이 발생하기 반년 전 일촉즉발의 시기 1949년 11월 6일 지경리에서 북괴로부터 무기를 받아 이송하던 무장공비를 대한청년단원이 영덕경찰서 남정지서에 신고해 경찰들의 신속한 작전전개로 공비30명 사살 6명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듬해 1950년 2월 4일 신고에 대한 복수에 이를 갈던 무장공비 50여명이 지경리 양민 34명을 학살하고 99명의 사상자를 내는 천인공노할 대참사를 일으켰다. 한국방송공사는 잔혹하게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혼을 위로하고자 625동란 35주년인 1985년 지경리에 위령비를 건립했다.  1984년 3월 한미연합 상륙작전 훈련 중에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하여 미군 18명, 한국군 11명의 안타까운 젊은 군인들의 목숨이 산화했던 사고가 일어나, 1989년 9월 영혼을 추모하는 충혼탑이 방석리에 건립되어 매년 반공위령제 및 관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호국에 따른 크고 작은 희생으로 국난 극복의 큰 발자취가 남겨진 송라면, 역사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요즘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희생의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전국 유일 `앉은줄다리기`재현, 무형문화재 등록  송라면에는 1900년도 초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화진리 해안마을 전통 풍습인 `앉은 줄다리기`재현 행사가 유명한데 정월 대보름날 새벽, 마을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 후 이날 정오에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줄을 당긴다. 전통적으로 여인들만이 줄을 당겨 왔는데, 앉아서 줄을 당긴다고 해 `앉은 줄다리기`라고 하고, 또 암줄과 수줄이 각각 네 가닥으로 돼 있는데 줄 모양이 기(`게`의 방언)를 닮았다고 하여 `기줄당기기`라고도 한다.  줄다리기는 마을 안녕과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며, 줄 행태가 독특하고 타 지역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며, 역사 또한 100년이 넘어 2016년 9월 포항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잠시 쉬었지만 2019년까지도 `제9회 포항 송라면 전통 앉은 줄다리기 재현 행사`가 5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성료한 바 있다.  ◆ 숨은 명소 `여인의 숲`에 이어 내연산 치유의 숲 올 준공   송라면 하송리는 면적 3만㎡에 상수리나무 등 15종 400여본의 작지만 아름다운 숲이 잘 보존돼 있는데 이름 또한 아름다운 `여인의 숲`있다. 조선말기 이 마을에서 주막을 하며 재산을 모은 여인이 마을의 상습적인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거금을 들여 땅을 사 숲을 조성해 마을에 희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11년 천혜의 산림자원과 아름다운 외적인 모습에 조선시대 주막과 여인이 주체가 된 차별화 된 스토리로 산림청 생명의숲 국민운동본부 등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내연산 자락인 송라면 중산리 일원 55ha에`내연산 치유의 숲`이 준공을 앞두고 있어, 내연산의 사계절 경관과 음이온, 피톤치드를 활용한 산림치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치유센터에서는 기초 건강측정과 함께 열 치유, 편백 족욕, 건식반신욕, 숲 요가 등을 운영하고 야외 숲속에서는 숲 치유인자를 활용한 복식호흡, 치유숲길 걷기 및 음이온풍욕장, 치유정원 등의 공간을 활용한 숲체험 프로그램을 계획 중으로써 산림복지 서비스 제공은 물론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지난해 말 해양수산부에서 공모한 `2021년도 어촌뉴딜 300사업`신규대상지로 송라면 방석항이 선정돼 어항시설 정비, 방석체험휴양마을센터조성 등 지역밀착형 생활 SOC사업에 84억원이 투입될 예정으로 살기 좋은 어촌마을 환경조성사업도 추진중이다.  지역 출신 윤은하 송라면장은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시점이나, 포항제일의 관광1번지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이자, 살기 좋은 농어촌마을 송라면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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