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질서의 가장 규격화된 법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개인이 원하는 대로 마약도 하고 돈도 빼앗으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은가. 내가 하고 싶은 것 까지 규제당하면서 한번 뿐인 인생을 굴레 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는가. 언젠가 샤워를 하다가 법이 왜 존재해야 되는지 깨달았다.  단지 샴푸 통에 린스를 넣어두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샴푸 통을 믿고 샴푸 통을 눌렀을 때, 샴푸가 나와서 안심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혼란, 즉 무질서의 상황보다는 안 좋은 점도 많고 불편한 점도 많은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질서 없이는 이러한 문제점이 동반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최선의 질서인 모두에게 행복을 주며, 정의로운 질서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나는 화제를 `질서`로 설정하여,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질서에 대한 조건을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하나의 명분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회는 생명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의 질서는 전체 구성원들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대표하는 상층부 엘리트에 의해 형성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협의 없이 형성된 지배 질서는 대중의 희망과 바람에는 관심이 없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오로지 지배자 한 사람의 책임과 각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압적 지배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는 전체 구성원들의 자발성에 의한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유헌정론`에서는 사회적 질서가 권력에 의해 중앙집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입장을 비판하면서 자생적이고 분권적인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다중심적 질서가 가능하며, 이러한 질서 속에서 개인은 자유로울 수 있다면서 권위주의적 지배 질서를 비판한다. 또한 질서를 사회적 차원에서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과 `자유헌정론`은 둘 다 인간 공동체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 스스로 세워 나가는 질서인 `정치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적 질서의 바람직한 형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특히 그것이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하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국가 공동체, 나아가 인류 공동체의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당신들의 천국은 인간 공동체의 질서가 일인 또는 소수 지배자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개 성원들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협의적 질서`를 역설하고 있다.  자유 헌정론에서는 주장하는 `다중심적 질서`도 당신들의 천국의 `협의적 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중심적 질서`란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상호 작용하여 확립되는 정치 질서를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천국`과 `자유헌정론`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이러한 질서를 `다원적 정치 질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가 다양한 색깔을 띠기에 아름답듯, 역사적으로도 다양성이 존중된 시대가 창조적인 문화를 꽃 피웠다. 우리는 특히 문학이나 예술세계, 그리고 현대과학을 통해 다양성이 얼마나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반면에 삶의 다양성이 결여되면, 그만큼 삶이 획일화되므로 삶의 질이 퇴보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제각기 다양한 색깔을 지닌 창의적인 소수자들이 오히려 귀한 존재인 것이다. 결국 삶의 다양성을 긍정해야하며, 이런 의미에서 삶의 다양성은 반드시 필요할 뿐 만 아니라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질서를 유지하기란 참 힘들다. 하지만, 현대는 다양성, 다원적 가치, 다름 속에서 같음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자신이 자신의 다양성을 추구하듯이, 타인의 다양성 또한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질서`를 통해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질서`가 없다면, 당신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공존공영 조화로서의 질서, 자생력 있는 질서로 우리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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