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화사한 꽃물이 가슴에 스며오는 듯하여 마냥 행복했다. 그토록 앞 다퉈 자태를 뽐내던 봄꽃들이 지자 꽃 진 자리에 연초록 이파리들이 날이 갈수록 푸르름을 더하는 5월이다. 눈부신 산하(山河)의 신록에 이끌려 마을 뒷산을 오르노라니 숲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향취에 절로 도취돼 걸음마저 깃털처럼 가볍다.  그러고 보니 세상 온갖 악취에 오염돼 이 순수한 자연의 향을 깜빡 잊고 살았다. 어디 잊은 게 이 뿐이랴. 숲이 지닌 찬란한 아름다움도 외면한 채 지냈다. 살면서 몇 번이나 숲을 이룬 나뭇잎처럼 심신을 햇살 앞에 온전히 드러낸 적 있던가. 당장 자외선에 얼굴이 그을린다고 지수 높은 자외선 차단제로 피부에 와 닿는 햇살을 거부했잖은가.  숲에 들어서니 이름 모를 새들의 청아한 우짖음이 들려온다. 그 울음소리를 듣노라니 혼미하고 어지럽던 머릿속마저 헹구어지는 느낌이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릴 때 잡다한 잡념으로 답답했던 가슴도 순간 말끔히 씻기우는 듯하다.  가끔 이 산을 찾을 때마다 마주치는 노부부가 있다. 지팡이에 노구를 의지한 채 두 분이서 손을 꼭 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을 힘겹게 오르는 모습에서 노년의 부부 사랑을 새삼 확인하기도 했었다. 오늘은 그들이 산 속 소로(小路)에 놓인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숲이 안겨주는 청량감에 젖어있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 오늘따라 노안(老顔) 가득 평화로움과 알 수 없는 환희가 넘치는 표정이어서이다. 5월의 숲은 이렇듯 인간에게 기쁨과 행복을 무한정 안겨주고 있다.  5월의 태양빛을 받은 연초록 나뭇잎들이 불어오는 싱그러운 훈풍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광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희열에 들뜨게 한다. 이참에 그동안 코로나19 창궐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위축되고 침잠됐던 마음자락을 이 숲 속에 오롯이 내다널고 싶다. 그러면 음습하고 눅눅했던 나의 가슴이 습기를 거둬 보송보송해질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귀 기울이면 숲에서 속삭임도 들려오는 듯하다. "삶에 지칠 때면 언제든지 우리에게로 와주세요 당신의 처진 어깨를 다독여 드리고 고통에 시달리는 가슴을 어루만져 줄게요" 이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하며 아름다운 자연의 언어인가. 우린 단 한번이라도 이 숲처럼 누군가에게 이렇듯 진심어린 위무의 말을 건넨 적 있던가. 마치 진심어린 위로와 용기 주는 말을 건네면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아끼고 또한 인색했잖은가.  그러나 숲은 관대하고 따뜻하고 안락하기가 마치 어머니 품속 같다. 남녀노소 사회적 신분고하 가리지 않고 포용하고 감싸준다. 그리곤 숲 자체가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무언으로 들려주고 있다.  " 너무 힘들게 살지 말아요. 인생은 일회성이고 순간순간의 편린(片鱗)이 모여 세월이 되잖아요. 갈등과 분열을 넘어 서로 아끼고 배려하며 이 시간을 살아보세요"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다. 이 나이 이르고 보니 그동안 움켜쥐려 했던 게 실은 헛바람이었다. 아무리 손에 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형체 없이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욕심 그 자체였다. 부와 명예, 그 무엇도 생을 다하고 저세상으로 갈 때는 지니고 갈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늘도 악착같이 물질을 모으려고 아귀다툼을 하고 늘 욕심 주머니를 채울 계산에 머릿속은 복잡하다.  꽃이 피고 지는지, 연둣빛 이파리가 꽃보다 고운지, 미풍이 두 볼을 간지럽히는 촉감도 못 느낀 채 허상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라면 지나칠까. 바삐 앞만 보며 내달리던 걸음을 멈춘 채 5월 숲에 들어서보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인생의 패가 다소 해결되는 느낌이라면 필자만의 생각일까.  5월의 숲은 이렇듯 우리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가를 그 핵심을 짚어주고 있다. 정답이 없는 인생사에 명쾌한 답안지를 내어주기도 한다. 그 답안지에 이렇게 쓰련다. 가장 캐피털 레터로 써야 할 말이 그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안분자족(安分自足) 하며 사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인생 완성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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