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씨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거나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면 제 작품과의 의사소통이 부족한 것으로 저의 바코드를 해독하지 못한 것입니다”   솔뫼 정현식 선생이 3년 만에 열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 ‘몽필생화 - 흐릿한 붓 끝에 꽃이 피다’는 오는 30일부터 7월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 1, 2층에서 펼쳐진다.   ‘몽필생화(朦筆生花, 흐릿한 붓끝에 꽃이 피다)’는 흐릿한 붓끝을 몸으로 삼은 선생의 형상 너머 ‘보이지 않는 형상’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며 마침내 피워놓은 ‘꽃’을 상징적으로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이다.   정현식 선생은 한글 민체와 한문 서체의 융합으로 해학적인 글씨의 형상, 체계의 구성미가 돋보였던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MZ세대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는 등 솔뫼 서예 작품이 진일보한 스펙트럼의 확장으로 보인다.    특히, 신진 작가들의 시각과 감각을 선생의 의식과 함께 기획한 작품을 통해 독창적인 작가의 실험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서예를 바탕으로 응용 디자인으로 확장하고, 가구, 의류, 스테인리스 등 서예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 표출로 나아간 것이 그것이다.   또 옻칠 종이 · 대마지 · 고지 · 전통 한지 등의 다양한 화선지를 시도했으며 문자 명상 · 수행 정신 · 서예인문학을 통한 철학적 사유를 밑천 삼아 창작한 100여점을 선보인다.    ‘임제록’ 병풍 1만6000여자, 16폭 등이 주요 작품으로 손꼽힌다.   전통서예의 법과 맥을 잇는 솔뫼 선생의 승고(承古) 작품들은 깊고 자유롭다. 한글 솔뫼체와 한문서체의 조화와 호환성, 해학적인 글씨의 형상 체계는 어느 순간 현대미감을 듬뿍 담은 작품으로 변모해 활달하고 생생한 필세를 기막히게 풀어놓는다.    특히 서체 폰트의 선구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이모티콘 개발 역시 솔뫼 선생이 추구하는 서예술의 확장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전통서예의 맥을 잇는 승고의 특징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작품은 수년 전부터 진행해온 수묵점묘 작품과 지총 작품이다.   새로운 도전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특히, 수묵점묘(水墨點描), 쓰고 버려진 화선지를 이용한 지총(紙塚)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의 수묵점묘 작품은 단지 표현 방법변화에 그치지 않고 글자의 집합군 표현으로 수묵점묘의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총 작업에서 지총은 ‘지(紙)’를 토지 삼아 경작해가는 자신과 예술을 돌아보는 한 과정의 결과다. 그렇게 나온 지총 작품에서는 환경문제를 시대적 공감으로 이끌어낸 작업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다양한 이모티콘들이 더해졌다. 서예는 필연적으로 서예가의 풍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예를 정신의 예술이라하는 이유다. 작가는 서폭(書幅)에 획을 가두지만 서폭에 가둔 것들을 꺼내 심중에 옮겨놓는 것은 독자나 관람객의 몫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작품에 임한다. 그러기에 선생은 끊임없이 시도하고 다시 풀어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점검하기를 반복한다.   솔뫼 선생의 작업 노트 한 구절에서 ‘서예’를 갈구하는 선생의 구도적 자세를 읽을 수 있겠다.    “서예는 모르긴 해도 긍정 너머, 악한 감정 너머 있는 것 같다. 선도 악도 아닌 그 틈새 사이에 있다. 서예라는 형상의 물건에 집착하면 글씨 맛은 사라진다. 한 생각 걸림 없을 때 글씨는 ‘도’ 라는 행위 넘어 가장 지극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생이 출판한 ‘몽필생화’, ‘푸른 소를 타다’, ‘불서한담’, ‘한 말씀 꽃이 되다’를 전시기간 동안 만나볼 수 있다. 7월 5일 오후 2시에는 백악미술관 2층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의 사유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함께다.   또 이번 전시에 이어 11월에는 경주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선생의 작품 다수를 만날 수 있다. 솔뫼 정현식 선생은 열다섯 번의 개인전과 대한민국서예대전, 각종서예대전 심사위원(위원장),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서예문화상, 경상북도문화상, 올해의서체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예작품으로 만나는 노자도덕경’, ‘솔뫼민체’, ‘사자소학’ 외 작품집(8권) 등을 출간했다.    또 솔뫼민체, 솔뫼한자, 손편지, 광개토대왕비 등 대한민국 최대 글자수인 9종 폰트를 개발했다.   현재 선생이 20년째 살고 있는 경주 야척길 ‘주소지가 간단한 시골마을 맨 끝집’에서 솔뫼문자예술연구소, 갤러리솔뫼를 운영하며 전업작가로, 책 쓰고 강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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