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이상하다. 봄은 덥고, 여름은 길어진다. 가을은 느낄 사이도 없이 짧아지며 겨울은 춥지 않다. 어느 해 여름은 쏟아지는 폭우와 느닷없는 태풍으로 점철되고, 어느 해 여름에는 기나긴 폭염과 열대야가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한다. 이런 이상한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갈수록 더 예민해진다. 우리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예보정확도는 과거보다 향상되고 있다. 적어도 수치로는 그렇다.우리 기상청이 발표한 예보정확도는 85%다. 기상선진국인 일본이나 미국의 예보정확도와 1~3% 정도의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체감하는 예보정확도는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예보정확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틀린 예보에 대한 비난이 기상청에 봇물처럼 쏟아질 때 즉시 범인이 검거된다. 범인은 항상 같은 놈이다. 슈퍼컴퓨터다. 틀린 예보에 대한 범인이 정말 슈퍼컴퓨터이긴 한가? 슈퍼컴퓨터라는 범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예보의 생산과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예보의 생산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단계는 ‘기상실황 파악’이다. ‘기상실황 파악’ 단계는 현재의 날씨를 파악하는 단계다. 자동 기상관측 시스템 등으로 지상기상을 파악하고 부이(buoy), 등표, 선박 등을 통하여 해양의 기상을 파악한다. 또, MTSAT(일본국토교통성과 기상청이 관리하는 다기능위성)이나 NOAA(미국 상무부가 관리하는 위성들) 같은 위성을 통하여 해안가의 바닷물 분석자료, 열대의 폭우와 허리케인 추적자료 등의 다양한 자료를 수집한다. 한편으로는, 라디오존데나 윈드프로파일러 등을 이용하여 대기의 고층 기상을 관측하고, 레이더를 통하여 강수의 유무와 강수 강도를 파악하기도 한다. 둘째 단계는‘자료처리’ 단계이다. 통신용 컴퓨터를 이용하여 국내와 외국의 각종 기상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분석용 컴퓨터로 보낸다. 분석용 컴퓨터는 수집된 기상 자료를 토대로 각종 일기도와 예보자료를 생산한다. 셋째 단계가 ‘분석 및 예보’ 단계다. 국내외에서 수집된 관측자료로부터 수치예보 모델을 이용하여 수치예보자료를 생성하고 예상일기도를 작성한다. 수치예보자료를 생성하고 예상일기도를 작성하는 바로 이 단계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범인인 슈퍼컴퓨터가 활용된다. 기상예보관들은 위에 언급한 기상실황 자료와 각종 일기도, 그리고 다양한 예보자료와 외국의 예측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충분히 토의하여 최종 예보를 생산한다. 이렇듯 예보를 생산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그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여러 과정 중에서 슈퍼컴퓨터가 하는 일은 그저 예상일기도를 작성하고 수치예보 모델의 결과물을 생산할 때 계산기로 활용될 뿐이다. 기상관측자료와 예측자료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굉장히 빠른 속도를 가진 슈퍼컴퓨터가 아니면 정해진 시간 안에 자료를 생산해 낼 수 없기 때문에 날씨 예보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슈퍼컴퓨터는 날씨를 못 맞출 수 밖에 없다. 슈퍼컴퓨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을 연상하면 오산이다. 슈퍼컴퓨터는 속도가 엄청 빠른 전자계산기, 하드웨어의 하나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한갓 쇠붙이에 불과하다. 날씨를 맞추는 것은 사람이고 수치예보 모델이다. 슈퍼컴퓨터가 아니다. 그리고 수치예보 모델도 결국 그 논리와 풀이의 알고리즘은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언론에서, 국회에서, 슈퍼컴퓨터를 잦은 기상 오보의 범인으로 지목해왔다. 그러나 슈퍼컴퓨터는 범인이 아니다. 기상 오보를 줄이고 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기상전문가를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슈퍼컴퓨터 안에서 날씨를 맞추는 데 활용하는 정확하고 강력한 수치예보 모델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많은 학생의 꿈은 과학자였다. 요즘은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이 매우 드물다. 내 아이가 과학자를 꿈 꿀 때, 겉으로는 ‘쿨(cool)’ 한 아버지인 척, “그래 열심히 노력해서 과학자가 되렴” 말하면서 속으로는 말리고 싶은 것이 현실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여건 좋은 외국에서 공부하렴” 하며 떠밀고 싶다. 기상 오보의 엉뚱한 범인은 이제 그만 쫓아야 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인력에 대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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