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은 솔잎만 먹듯이, 근심은 마음만 갉아먹는다는 전래가 있다. 과도한 걱정을 자주하는 사람이 있다. 늘 무엇이든 걱정하는 사람이나 늘 남에게 걱정을 끼치는 사람을 두고 `걱정꾸러기`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이고 심적인 고민인 걱정·근심이 또 하나의 병(病)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걱정은 속을 태우거나 마음을 끓이는 일로 걱정을 일부러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걱정에 중독된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근심은 괴롭게 애를 쓰는 마음이 놓이지 못한 상태로 생각이 홈을 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사를 뒤숭숭하게 한다. 그리고 걱정은 마음과 정신을 파괴시킨다.   고민한다고 괴로움이 해결되나 하면서 나를 기쁘게 할 행동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우리 주위에 참 많아지고 있다. 오락이나 취미생활을 통해서 억제를 풀고있는 현실에 몰두한다. 문제는 결심과 실천이 재생되면 희망과 의욕이 더욱 활기를 안게 된다.   그러면 걱정이 주는 심리적 유익은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라는 목표 아래 자중자애하는 정신도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관리에 생각보다 행동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성서 `잠언서`에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마음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고 했다. 가벼운 근심은 말이 많고, 무거운 근심은 말이 적은 것이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사람의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지만, 마음 속에 걱정이 있으면 불과 몇 미터만 걸어도 피곤함을 느낀다. 나쁜 사람과는 함께 살아도, 싫은 사람, 미운 사람하고는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치와 같다.   인생의 행로도 늘 명랑하게 유쾌한 마음으로 자기가 걸어갈 길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만약 인생이 불행하다면 우리는 괴로운 짐을 벗어 버리려고 애쓴다. 반대로 인생이 행복하다면 그것을 잃어버릴까 겁을 낸다. 깊이 생각하면 행복이고, 불행이고 마음에 부담이 되는 점은 일반이고, 모두가 동일하다.   철학자 카네기는 그의 회고록에 엄중히 쓴 글 중에, 당신은 지금 근심하는 일들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누가 나를 원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는 무슨 일이 실패할지 모른다. 이런 걱정이거든 지금 당장 떨어 버려라. 현재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확실한 일에 대한 걱정을 떨어 버린다면, 현실적으로 걱정될 만한 일은 그다지 많은 것이 아니다. 걱정의 99퍼센트는 오늘의 일이라기보다는 내일이나 미래의 일임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미 저질러진 불행에 대해서 자꾸 근심하는 것도 졸렬한 노릇이다. 엎질러진 물, 깨어진 그릇. 다시 담을 수 없고, 바르게 고칠 수 없다. 걱정하고 한탄한들 전과 같이 될 수는 없다. 걱정으로부터 자기자신을 해방시키라 했다.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 한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맺어주는 친근한 감정, 그것을 우리는 근심이라 한다. 사람들은 작은 걱정을 중요시하고 과장하기 때문에 본심은 그렇지 않으면서 조바심하고 속을 태운다.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사소한 걱정으로 소모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신의 행동이다.   좋은 가옥에 살면서 한뎃잠 자는 사람 생각하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호구도 못하는 사람, 시원한 곳에 있을 때는 더운 사람 생각하고, 따뜻한 곳에 있을 때 옷 없이 헐벗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 걱정 없이 위안을 받고 살게 된다. 비싼 밥 먹고 헐한 걱정한다는 말처럼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생각이 중요하고,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한다. 생각은 머리를 써서 궁리하는 사고(思考)로 마음이 솔려 바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므로 근심을 잊지 못하는 습성에서 벗어나라 한다.   정신은 육신의 고통 앞에서 쉽게 부서진다. 걱정과 근심, 그리고 불안과 우울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날리는 불행의 화살이다. 고민 또한 괴로워하고 속을 태우고 갉고 헐뜯는 고뇌(망념)이다.   고민은 없어진 것처럼 생각되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민에 대한 최고의 양약은 종교적인 신앙뿐이다. 정신적인 고민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짐스럽다. 자기 고민이란 자기도취에 불과한 때가 있지만, 바쁘고, 급하고, 분주하면 고민할 사이가 없어진다.   고민을 가볍게 하는 가장 훌륭한 치료법은 신임하고 후덕한 성직자를 찾아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위대한 고민만큼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고,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람은 다만 고민과 더불어 고민을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남에게 말 못할 어려운 사정이 있어 마음속으로 혼자 애태우는 답답한 사정은 절대 피해야 할 금물이다. 고민의 대부분은 그 근원이 인간성 속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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