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정숙 시인이 경주 문정헌을 찾았다.   정숙 시인은 이달 26일까지 문정헌에서 열리는 ‘제1회 문정헌 멀티 시전, 경주를 노래한 한국의 명시전’에 선정된 20명 시인 중 한 명이다.   이번 명시전에서 동시대 작품으로 선정된 이하석, 윤석산, 정호승, 이성복, 송재학 등의 시인 중에서 여류 시인으로는 유일하게 정숙 시인의 시가 선정됐다.   문정헌에서 김성춘 국제펜한국본부경주지역위원회장, 조기현 펜경주 사무국장, 소설가 김 산과 독자들이 차 한 잔을 나눈 자리에서 정숙 시인은 인생의 자락마다 동행한 그의 시에 관한 이야기들을 펼쳐냈다.   즉흥적으로 이뤄진 시낭송과도 함께였다.   고희를 넘겼다는 시인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화산이었다. 아직도 신 자두 같은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시와 시극 활동, 시 강연를 펼치며 삶과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정숙 시인은 경산 자인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주와의 인연도 깊다. 경주월성중학교 국어교사로 보낸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정숙 시인은 “1991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시에 입문해 30여 년 동안 ‘삽질을 더해라’, ‘삼천포로 빠져라’ 등의 모토로 시를 써왔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삶을 들여다보고 엉뚱하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과 낯설기를 통한 시 쓰기를 강조해왔다”고 했다.   시인이 ‘삽질’을 깊게 하고 삼천포로 빠지면서 시에 매달리게 된 것은 교직을 그만두고 결혼 후 며느리로 층층시하에 살면서 15년을 보내고 난 후였다.    대구문학아카데미에서 공부하게 된 그에게는 펜을 놓고 살았던 응축된 세월의 무게는 어느덧 귀한 자산이 되었고 폭발적인 ‘소설 같은 시’ 쓰기에 전념하게 된다.    시들에서는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우울이나 원망과 후회의 그늘은 찾을 수 없다.   특히, 처용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신처용가’를 연작시 86편으로 엮어 1996년 펴내, 첫 시집임에도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웬 생트집?- 처용아내 ‧1(신처용가)’    ‘가라히 네히라꼬예?/ 생사람 잡지 마이소예/ 달이 휘영청 청승떨고 있지예/ 밤이 ‘어서!어서!’ 다구치미 깊어가지예/ 임카 마시려던 동동주 홀짝홀짝/ 술삥이 혼자 다 비았지예/ 용광로 부글부글 끓는데 임이 안 오시지예/ 긴 밤 지쳐 살풋 든 잠, 찔레꽃 꺽어 든/ 귀공자를 잠시 반긴거 뿌인데예/ 웬 생트집예?/ 셔블 밝은 달 아래서/ 밤 짚도록 기집 끼고 노닥거린 취기,/ 의처증 된기라예?/ 사철 봄바람인 싸나아는 간음 아이고,/ 외로움에 속 골빙 든 여편네/ 꿈 한 번 살짝 꾼 기 죈가예? 예?//’    이 시는 이번 명시전 출품작인 ‘웬 생트집?`의 전문이다.    아내의 심리 또는 여성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시는 남성 위주의 현실을 속시원하게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입말로 읽으면 깨달음과 공감의 감탄이 절로 우러나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어는 경상도 사투리 입말을 그대로 옮겨 현장성과 사실성을 지녀 김재홍 교수의 ‘한국 현대시 시어 사전’에 다수 등재되기도 했다.   함께 자리한 김성춘 회장은 “경주를 노래한 전국의 수많은 시인과 시 중에서 ‘명시’ 선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특히 여러 여성 시인들 중에서도 정숙 시인은 분명한 이야깃거리와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돋보여 이번 명시전에 선정하게 됐다”면서 이번 출품작 ‘웬 생트집’은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스런 시어로 구현해 낸 시라고 했다.조기현 사무국장은 “가부장적 고대 국가 남성 위주의 권력 체계 속에 짓눌려 있는 여성의 문제를 화산이 폭발하듯 농익은 경상도 사투리 그대로 풀어내 현대적 감각이 살아있는 시”라고 말했다.   입말의 시는 정숙 시인만의 콘텐츠이자 트레이드 마크가 됐고 시 낭송으로 혹은 시극으로 재창조돼 시인과 함께하고 있다.   그는 또 ‘위기의 꽃’, ‘바람다비제’, 시선집 ‘돛대도 아니 달고’, 전자시집 ‘그가 날 흐느끼게하네’, ‘연인, 있어요’ 등의 시집을 냈다. 삶의 위기 속에서 시를 꽃피운 시인의 여러 시집은 녹록지 않은 삶을 긍정과 해학, 풍자로 풀며 견뎌온 깨달음의 또 다른 편린들이었다.   그는 만해‘님’ 시인상, 대구시인협회상, 경맥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 전국시와시학 시인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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