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말라 있던 땅에 몇 번 소나기가 잠깐씩 지나가고 가뭄에 말라가던 풀들이 무섭게 자랍니다. 지난해 조그만 포트 세 개를 사다 심었더니 그 사이 제법 벋어서 화단 한 귀퉁이에 흙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퍼진 백리향들 사이로 생김새가 조금 다른 풀이 눈에 들어옵니다.    얼굴을 가까이하여 유심히 살피니 그건 백리향이 아니라 잡초라고 푸대접 받는 애기땅빈대인 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애기땅빈대와는 뭔가 좀 다릅니다.    붉은 줄기 좌우의 암녹색 이파리에 빈대처럼 생긴 어두운 무늬가 있고 땅 표면에 납작 엎드려서 퍼져나간다고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과 달리 이것들은 잎에 무늬도 없거니와 위로 키를 키우며 자라 있습니다.    원래 암녹색이던 이파리가 주변의 백리향처럼 밝은 녹색으로 변한 것도 눈에 띕니다. 잎무늬 흔적이 희미하거나 사라졌어도 이파리가 백리향보다 조금 더 커서 찬찬히 보면 충분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처음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내던 때, 마치 불량소녀 같이 되바라져 보이던 땅빈대는 백리향과 함께 살기 위해 백리향의 색깔과 향과 몸짓을 닮아가기를 선택한 걸까요? 놀라운 일입니다.    애기땅빈대만이 아니라 사람도 오래 함께 하면 상대의 취향과 습성을 웬만큼은 닮는 것 같더군요. 평생을 함께 한 사이좋은 노부부를 보면 둘의 표정도, 주름살 지는 자리도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희비(喜悲)와 애락(哀樂)을 나누며 살아오는 동안 서로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안 감정을 만드는 그들의 얼굴 근육도 그에 따라 비슷하게 바뀐 거겠죠. 닮는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인가 봅니다.    이번 여름 세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이 심각합니다. 작년에 이어 유럽 남부와 미국 서부의 섭씨 40도를 넘기는 더위 속에 산불이 일어나 꺼지지도 않고 점점 커지기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 일본은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고 많은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며칠 중부지방에 내린 100여 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사람이 죽고 재산상의 피해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인간이 지금껏 이루어 낸 문명의 역설로 지구는 공기 중 탄소량이 한계치를 넘어 앞으로 이런 기상 이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합니다.    제임스 러브록이라는 영국 학자가 1970년대 초에 `가이아 이론`이라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고, `지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결국 가이아는 `어머니이신 대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이아 이론의 핵심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상태가 항상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이 서로 유기적 조직을 이루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요? 지구와 그 지구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은 하나의 생명으로 볼 수 있다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지구에 이상이 생기면 그 안의 생명체들에게도 이상이 생기는 건 자명한 이치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거지요.    즉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함께 하나의 유기체를 이룬다는 가설입니다. 지구 유기체라는 생물학적인 말에 대해서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생물체 종은 아니라는 생각은 합니다.    지구라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명체들은 더불어 산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며 서로서로 협조하는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이웃들 중 어느 하나가 욕심을 부려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나무의 여건을 바꾸려 한다면 나무에 기대어 사는 다른 생명체들은 그만큼 피해를 입고 시들어 갈 테고, 궁극에는 인간도 시들고 말 겁니다. 제임스 러브록은 심지어 인간의 문명을 지구의 암적 존재라고까지 극언합니다.     제 화단의 애기땅빈대는 자기가 주인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백리향 사이에서 섞여 살려면 백리향을 닮아가야 한다고 판단했겠죠? 인간도 지구의 주인이 아닙니다.    지구라는 거대한 나무에 기대어 살고 있을 뿐입니다. 주위의 이웃들과 사이좋게, 서로 닮아가면서 살려고 할 때에야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라는 대지에 속한 모든 것이 인간만을 위한 것이니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의 것을 빼앗고, 바꾸고, 없애도 된다는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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