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어느 날, 주독일 한국대사관 참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독일 본 대학 허베(Huwe Albrecht) 교수란 분이 독일어로 된 훈민정음 관련 책을 냈는데 교수님께서 잘 알고 계시다고 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예, 1996년 중국 옌지(延吉)에서 열린 `코리언 정보처리 학술대회`에 훈민정음 관련 논문을 발표해서 아는 분입니다."  사실 그때 논문은 발표되었으나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논문의 내용을 잘 기억하는 까닭은 그 회의에서 북한 학자들은 특별히 자모 순서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필자는 1992년 ISO/IEC JTC1/SC2 국제문자코드에 실릴 한국안을 결정하는 서울 회의에서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훈민)정음형 코드`를 제안하였고, 결과로 채택되어 현재 유니코드에 실린 `한글 자모`의 탄생에 기여한 바 있다.    그때 한글자모 코드는 한글맞춤법을 따랐기 때문에 북한의 조선글 자모 순서와 달랐다.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북의 학자들이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그때 필자가 허베 교수의 논문에서 `훈민정음 자모 순서로 하자`라는 내용을 상정하여 검토 대상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2017년 9월 "저는 허베입니다. 9월 12일 경주에 갑니다. 혹 찾아뵈어도 되는지요?" 정말 반가운 전화였다. 21년 만에 필자의 연구실에서 처음 만났다.그때 마침 2015년부터 3년간 연구하던 훈민정음 공학화 연구 과제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1992년 훈민정음해례에서 정의된 약 398억 소리마디 글자 생성 원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뒤 이를 컴퓨터에 구현하는 것으로 조합 방식에 따라 약 398억 소리마디 글자꼴의 완전 집합을 보여 줄 수 있었다.    9월 14일 허베 교수는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이란 주제의 강연을 하였다. 내용은 필자의 연구 핵심을 인용하였다. 그는 같은 해 11월 3일 세계유산도시기구 경주총회에서 주제 강연을 하였고, 명예 경주시민이 되고 경주시와 크베들린부르그(Quedlinburg)시의 자매도시 결연 성사에 크게 공헌하였다. 2018년 세계한글작가대회 때는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 II`라는 주제 강연을 하였다.    훈민정음해례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들이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풀어낸 것으로 정말 심오한 논리를 갖춘 과학의 산물이다. 이러한 훈민정음을 서양의 사고체계와 관점을 가진 분이 그것을 단지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한글맞춤법에 안주하며 훈민정음의 핵심적 참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질타하며 훈민정음의 참 가치와 문자로서 잠재 능력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의 이러한 연구 성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독일어 판에 이어 2019년에는 한글판을 펴냈는데 `알기 쉬운 날개를 편 한글`의 출판은 그 실체를 이해하고 대중에게 공감을 제공하며 그간의 연구 성과가 실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훈민정음의 표기체계의 확장성이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有天地自然之聲 卽必有天地自然之文)`라고 설파하신 정인지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천지자연의 천문학적 소리 표기에 상응하는 약 398억 소리마디를 표기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해례에 담긴 음양오행의 이치를 기반으로 인문학도에게 쉽지 않은 컴퓨터 과학과 공학의 실현 기술을 함께 다루고 있어서 훈민정음이 가진 힘의 위대성을 밝혀낸 연구로서 최정상에 있다고 평가한다.  1972년 뮌헨올림픽 때 군인으로 북한선수단 경호를 맡으며 맺어진 한국과 첫 인연은 그 뒤 대학에서 공부하며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고 마침내 훈민정음의 철학적 배경과 문자로써 엄청난 힘을 가진 것에 매료되어 한국에 유학하게 되었고, 한국의 사위가 되고, 세월이 깊어져서 한글과 훈민정음에 관한한 외국인 가운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일 뿐만 아니라 MBC TV `대한외국인`에서 가장 높은 계단에 있는 그분을 본 적이 있다. 훈민정음을 연구하며 맺은 알브레히트 허베 교수와 특별한 인연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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