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없으면 죽음을 달라!` 때가 가까이 닥쳐 여유가 없음인지 호소하는 사정은 생사의 갈림길이다. 자유를 잃어 본 자들만이 부르짖는 절규요. 발악이다.  자유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이며, 법률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생각대로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어떠한 형편, 어떠한 이유든 강압적으로 제한을 가하여 자유롭지 못한 것에 언행에 구박을 받는다면 인간이란 신분은 이미 상실한 것이다. 새장에 갇힌 새가 구름을 그리워함과 같이 속박당한 사람이 자유를 얻고자 함은 간절한 소망이다.  인간은 자유스러운 존재로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쇠사슬에 묶여있다. 자기가 남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마는 그런 인간도 실은 노예의 존재로 묶이게 되는 자승자박의 신세가 되기도 한다. 비록 그것이 황금으로 된 족쇄라 할지라 하여 사람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에도 한계가 있고, 제한을 당한다. 자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사람은 더욱 위태로움을 느낀다. 물고기가 자유를 찾아 물 밖에 나올 수 없고, 공중에 나는 새가 물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면 자유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그 무엇에도, 그 어떠한 필요에도, 어떠한 우연에도 예속되지 않으며 운명을 멀리할 수 있는 능력자의 몫이다. 신(神)은 인간에게 생명을 줌과 동시에 자유를 주었다. 그것은 폭력의 손에 의해 파괴될지는 몰라도 절대 분열되지는 않는다.  철학자요 교육자인 루소는, "세상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한탄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때로는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사람은 자기 내부에 규칙이 있고, 법률이 있다. 밖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정한 규칙과 법률을 좇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며, 자유의 생활이다"  그래서 자유를 선용(善用)하려는 자에게는 신의 도움이 있지만, 악용(惡用)을 괴하는 자에게는 도리어 방해적인 일들이 작용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전능하신 신은 모든 인간에게 자유로울 수 있는 생득(生得)의 권리를 주었고, 보통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취하길 소망한다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베푼다는 것이다.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 있어서 자기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의 법칙이라 한다.  신의 일념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했다. 인간은 그 자신의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라는 것은 법률에 허락된 사항을 행하는 권리이다.  자유를 새로운 종교처럼 여기고, 새로운 신앙을 찾아 생사를 걸고, 뒤찾기를 희망한다. 세계 곳곳에 자유를 찾아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하는 난민들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감지한다. 더욱이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고 방황했던 역사를 경험한 민족이며 자유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이미 겪은 백성들이다.  조국을 떠났다 다시 귀국했고, 타국으로 이민 갔던 한국민이 자유가 회복된 고국으로 다시 찾은 까닭도 억압을 체험했던 국민이었던 까닭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한 가지 어리석은 점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에게 없는 자유만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둑이 없는 강이 있겠는가. 오로지 속박 속에서만 자유가 있다고 한다. 인간 그 자체가 자유이며 자유가 곧 힘이다. 싹만 트면 성장이 빠른 나무요. 자유를 수호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에게만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는 생명이다.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험. 자유 회복은 생활과 직결된다. 그리고 제한 속에 자유가 특출해진다. 어릴 때 노는 일에 혼이 빠져 밤늦게 집으로 왔을 때 부모님의 야단 소리에 가장 겁나는 것 - 너 마음대로 집 나가거라. 어디든지 팽 나가거라. 그땐 정말 하고 싶은 자유가 완전 막힌다. 자유는 개인행동의 테두리 속에서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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