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한없이 부드럽다. 오죽하면 성품이 무던한 사람을 일러`물과 같다.`라고 할까. 하지만 물이 지닌 위력은 실로 놀랍고 한편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우린 폭우로 인한 수해에 대한 예방책이 미미하기 그지없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랄까.    이번에 쏟아진 집중 폭우가 할퀴고 간 상흔(傷痕)만 살펴봐도 물이 지닌 막대한 힘과 그 위험성을 짐작할 만하잖은가.     그래서일까. 해마다 장마 피해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어린 날 경험한 장마철 물난리가 새삼 떠오르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이맘때 일이다. 우리 가족은 밤새 쏟아붓는 빗소리에 잠을 못 이룬 채 뚝 아래만 응시했었다. 이때 붉은 황토물이 서울 중랑천 수위를 범람하여 다리 아래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물은 순식간에 시시각각 불어나 금세라도 중랑천 뚝을 허물고 그 일대 판자 집들을 모조리 쓸어갈 기세였다. 더구나 우리 집은 뚝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중랑천의 물살은 곧 우리 집까지 덮칠듯했다. 어린 마음에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당시 끝이 보이지 않는 중랑천 변 뚝 위엔 판잣집이 흡사 바닷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지어져 있었다.    경찰 고위공무원이었던 아버지였으나 잦은 바람기로 살던 집마저 빚쟁이에게 내주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된 우리 가족은 궁여지책 끝에 중랑천 변 판잣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요즘은 반지하 방이 가난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때엔 판잣집이 적빈(赤貧)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날 그토록 온천지를 뒤흔들며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도 아버진 딴 여인 치마폭에 휩싸여 집엘 오지 않았다.  겨우 벽돌로 벽을 엉성히 쌓고 루핑으로 지붕만 올린 부실한 건축물인 우리 집이었다. 더구나 중랑천 변 뚝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게릴라성 폭우로 중랑천 변 일대 판자 집들이 속수무책으로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린 맘에도 여차하면 피난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부재중인 집안에서 가재도구를 옮길 일이 큰 걱정이었다.  천둥 번개가 그치지 않고 중랑천 변 나무들이 폭풍우에 갈대처럼 온몸을 이리저리 휘청일 때다. 드디어 중랑천의 어마어마한 물살은 그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 집 마당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먼 시각인 새벽 3시 경이었다.  당황한 우리 가족들은 나이 어린 동생의 고사리 손까지 빌려서 둑 위로 대충 중요한 가재도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거지반은 둑 위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중에는 살림살이 옮기는 것을 포기한 채 겨우 몸만 빠져나와 물속에 잠기는 집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렇듯 어린 시절 겪은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는 훗날 트라우마로 작용한 듯하다. 장마철만 돌아오면 하천의 붉은 물살만 바라봐도 지난날이 떠올라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실 물만큼 고마운 물질이 어디 있으랴. 우주에 존재하는 동·식물뿐만 아니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영양분이 많아도 물이 없으면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없잖은가.  인간 몸속의 물만 해도 그렇다. 보통 사람은 몸속에 약 45L의 물을 지니고 있다. 그중 약 2.75 L의 물을 매일 갈아 넣고 있잖은가.  하지만 몸속의 물이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낀다. 또한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12% 정도가 부족하면 생명까지 잃는다.  한편 물은 인간의 성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하잖은가. 사람의 성격은 선천적인 요인 이외에도 기후· 풍토 ·종교 ·사회 및 가족 제도 ·교육 등 많은 후천적 요인이 복합돼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하여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물의 수질도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지나칠까. 사람 체중의 3분의 2가, 근육의 75%가 물이며 뼛속에 만에도 22%의 물이 들어있으니 인체에 차지하는 물의 비중만 미뤄 봐도 물 역시 성격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유익한 물도 잘못 다스리면 수마(水魔)로 둔갑한다.   삶을 살며 어린 날 장마와 같이 부지불식간에 덮쳐오는 역경과 고난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현재 우리가 겪는 코로나19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삶을 위협하기 시작했잖은가.  자연재해가 실은 곧 인재(人災)인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서일지도 모른다.  이번 서울에서 반지하에 살던 형제들이 소중한 목숨을 폭우에 빼앗긴 것도`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부동산 투기꾼들의 투기 심리에 의한 집값 상승 작용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다.  서울 집값이 안정됐으면 그 형제들은 햇빛 및 바람 한 줌 제대로 안 들어오는 곰팡이 천지인 반지하에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난이 원수이고, 인간의 헛된 욕심이 폭우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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