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영(朴洪英)총재는 대한민국 제1호 ‘한국공자학당(韩国孔子學堂)’설립자이다. ‘한국공자문화센터(韩国孔子文化中心)’ 총재이기도 한 그는 중국 흑룡강성 철리(鐵利) 출신으로 개혁개방 때에 청도로 나가 섬유 관련 투자사업으로 성공한 기업인이다.바쁜 와중에도 숭덕전 신라오릉 추향 대제에 시조왕릉 초헌관을 맡는 등 숭조 정신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숭덕전 능참봉 일행 30명을 한국 공자문화센터에 초청해 천자 문 1인 1자씩 붓글씨 쓰기와 유교문화를 체험하게 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공자문화센터 박홍영 총재와 박희길 대외연락부장, 박후기 신라오릉보존회 중국 총본부 사무국장을 비롯한 박두현 시조왕릉 참봉, 박준현 신라오릉보존회 경주본부 직할 회장, 박영택 홍보이사, 전·현직 릉참봉, 봉찬회 간부 등이 대거 참석했다. 이어 참봉일행은 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박총재는 “돈은 아무 때나 벌어도 되지만 진정 사람이 됨은 쉽지 않지요”라며 공자문화센터 설립 배경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박총재는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기업인으로서 오래전부터 기업의 성장과 함께 좋은 일들을 많이 해왔었다. 특히 장학사업에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중국어로 “돈을 쓰다(花錢)”의 의미는 “돈을 꽃처럼 쓰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중국은 등소평 시대에는 경제발전, 시진핑 시대에는 문화의 가치에 주목하게 되었다. 특히 18대 인민대표대회 이후 시진핑 주석은 중국 전통문화를 고양하면서 경제발전과 문화의 발전을 동시에 이루자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박 총재가 서울에 공자학당을 세우게 된 정치 배경이기도 했다. 경제발전에도 정신문화 빈곤을 느낀 중국은 공자 사상 숭배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는 것은 한국 공자학당의 활동이 컸다.   박홍영 총재는 중국 북경에서 20년간 기업을 경영한 잘 나가던 조선족 사업가였다. 한중수교 이후 사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언제까지 돈을 벌어야 할지 회의감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6년 전 한국에 공자학당을 설립하여 한국의 유림, 향교 등을 찾아 공자의 유교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습득하기 시작했다. 한국 공자학당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중국 공자기금회에도 회보했다.박홍영 총재는 중국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외면당하고 사라지기까지 한 공자 사상과 유교 문화가 한국에서는 잘 보존되어 발전해 오고 있는데 감탄한 나머지 이것을 잘 취득해 `한국의 유교문화를 중국으로 역수출`함으로써 한중문화교류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박 총재는 한국의 수백 곳 향교를 방문하고 각각의 향교를 사진과 함께 한글과 중국어로 소개한 책자를 김용필 EKW 동포 세계신문 대표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박 총재는 지금은 자기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공자의 유학에 푹 빠져서 공자 사상을 전파하는 삶 자체가 보람 있다며 활짝 웃었다.<인터뷰=박홍영 한국공자문화센터 총재>박홍영 한국공자문화센터 총재는 공자와 제자의 가르침인 학문을 후세에 이어가기 위해 사업가에서 유교 문화 전도사로 변신한 유학자이다. 중국 하얼빈에 태어난 박 총재는 하얼빈 조선족 마을의 폐교 직전인 학교에 공자학당을 세워서 폐교를 막은 일화가 있다.전통유교문화 활성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한중교류‧학술대회를 비롯한 양국 간 유교문화 교류를 위해 실시하는 양국 성지탐방에 청년, 대학생들이 많이 참여해 큰 보람을 가진다. 박 총재는 한국 공자학당 회장, 한국제노문화촉진회 회장,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부회장을 맡고 있다. ▶ 한국공자문화센터를 운영하게 된 동기는.- 한국공자문화센터는 중국의 유교문화와 한국의 유교문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공자학당은 중국 정부의 공식 인가를 받아 중국 유교문화 전파를 위해 2014년 중국에 제1호 공자학당을 개원했고, 현재 중국 내에는 2000여 개의 공자학당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22개국에 공자학당을 세웠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서울과 충북 제천향교, 충남 아산 온양향교 등 세 곳에 설치돼 있다.한국 공자문화센터에는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해야 했던 독립운동가의 땅인 한국에 와서 유교문화를 전파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많다. 이들은 중국에 한국유교를 소개하고, 한국에는 중국유교를 소개 하며 민간차원에서 양국 문화교류를 돕고 있다. 유교 문화로 동북 아시아권은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고 본다. ▶ 한국공자문화센터의 역할이 다양하다는데 - 학문‧문화적 교류차원을 넘어서 일자리 창출과 탐방‧관광 등 유교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다소 고리타분하게 여길 수 있는 유교를 일상에서 더 많은 현대인들이 접하도록하기 위해 유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고자 고심하고 있다. 유교문화로 몇 년 동안 교류‧학술대회를 진행하면서 느낀 게 있다. 우리 전통문화는 유교 문화인데 유교가 활성화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문화가 더 많은데 문제가 있다. 퇴색돼 가는 유교를 부흥시키려면 현대문화에 맞게 아이템을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 공자가 유가사상(儒家思想)과 제노문화 - 현재 한국공자문화센터는 기존 유교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유학문화와 유교인들의 경제 교류를 뜻하는 유상문화를 쌍두마차로 한다. 유학문화와 관련해 하위 개념으로 한국공자학당, 한국공자연구원, 한국맹자연구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유상문화와 관련해서는 중국 현 산동지역인 제‧노(齐‧鲁)문화 부흥을 위한 한국제노문화촉진회와 양국 간 글로벌 인재를 양육하는 공명국제인재개발원이 하부 조직으로 갖춰져 있다.공자가 유가사상(儒家思想)을 창시해 중국사회의 가치관에 초석을 마련했다면, 제노문화는 중화문화에 대해 큰 영향을 끼쳤다. 맹자, 장자, 손자, 묵자, 노반 등은 당시 제노 양국이 중화문명의 여러 방면에서 공헌하도록 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양국 간 유교문화 교류를 문화센터가 역할을 맡고 있다.▶ 공자학당 운영에 소요 되는 경비 충당은 - 공자학당은 순수 공익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금을 지원받는 것도 없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식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에는 이점이 있다. 현재 4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기는 선생이 따로 없다.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여기에 오면 서로 배우는 것이고 이게 우리가 이해할 점이다. 사람들은 자꾸 누군가를 가르쳐 주려고 한다. 자기는 잘 못하면서도 말이다. 공자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공자는 ‘인생의 본질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꾸 누굴 가르쳐 주려고 한다’고 말 하셨다. 우리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공자 선생 모시고 바른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유교 문화다. ▶ 총재님은 원래 기업인으로 성공하신 분인데 원래 기업인이 맞다.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현지에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유교문화 전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 원래 기업인이기 때문에 기업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지요.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시간을 한국공자문화센터에 퍼붓고 있다. 그 이유는 기업도 문화가 있어야 오랜 생명력을 가진 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문화가 없다면 가다가 일순간 멈추게 돼 있죠. 그래서 일단은 문화가 제일 중요하고, 한쪽으로는 기업도 해가는 것이지요. 지금은 문화생활에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문화를 모르니 남는 게 없고, 기록에 없으니 그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된다.문화는 인류의 혼이다. 역사를 계속 계승하고 기록에 남길 수 있는 게 바로 문화다.▶ 중국에 우리문화 전파를 위해 박물관도 만들었다는데- 내가 태어난 중국 하얼빈의 조선족 마을의 폐교 직전인 학교에 공자학당을 세워서 폐교를 막았다. 조선족뿐 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 학생들도 올 수 있도록 하나의 문화가 필요했다. 현재 조선족 마을은 조선족들의 이주로 수요가 감소해 학교가 폐교되고 있다. 사라져가는 조선족 마을을 생존시키기 위해 고향인 흑룡강성에 민속박물관도 만들었다. 사라질 마을도 문화가 있다면 살아날 수 있다. 서울시 송파구 롯데월드 인접한 요충지에 자리한 한국공자문화센터는 지하 박물관과 2층 공자학당, 3층 유교문화 체험실과 전시실, 신라방송국, 미래 인재양성과 문화체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한편 한국공자학당은 한중문화 교류 활동에 당야한 지원을 한다. 유학교육 연수사업으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학 경전 강좌교육 ▲유학문화 유적지 탐방 ▲글로벌 인재양성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정리:선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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