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형 인간이 된 듯하다. 꼭두새벽부터 눈을 뜬다. 이후 반복되는 일상이다. 요리 및 빨래, 집안 청소 등이 그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가사 노동에 얽매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가사 일부를 가전제품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집안일이다.  이런 경우를 일러 흔히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듯한 지루한 일상이라고 말하던가.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게 인간의 심리여서인가. 반복되는 일상이 마냥 권태롭다.  이런 터에 코로나 19라는 역병이 갑자기 덮쳐왔다. 질병이 안겨주는 고통만큼 두려운 게 어디 있으랴.  누구나 생명은 소중하잖은가. 몇 년 간 역병으로 삶을 위협받노라니 마치 일상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  이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 부인의,"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 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따뜻한 충고로 다소 위안을 얻곤 한다.  아울러`인생사에서 역경과 고통의 삶을 겪지 않은 이가 과연 얼마 일까?`도 생각해 본다. 그야말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 할 것이다.  대소(大小)의 차이일 뿐 온갖 풍상과 마주하는 게 우리네 삶 아니던가.  이 때 가장 견디기 힘든 삶의 고통 중 하나는 사랑을 잃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 활력과 열정 역시 사랑의 힘에서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던가. 사랑은 달콤하고 감미로운 감정만 추억으로 남기는 게 아니다.  나아닌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마음의 눈이 커지고 가슴이 넓어지는 진리도 터득케 한다.  특히 청춘 남녀 사랑은 인생의 꽃이기도 하다. 이런 사랑도 시대 따라 본질이 희석되는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 결혼 조건도 매우 이해타산에 얽혔잖은가. 상대 남성의 직업 및 아파트는 마련했는지, 연봉은 얼마인가를 계산기로 두드려서 이에 적합해야 결혼도 한다.  이런 셈법엔 요즘 일부 젊은 남성들도 익숙하단다. 배우자 될 여성이 사회적 능력 및 집안 재산은 어느 정도인가를 눈 저울질 하여 상대를 선택한다는 말도 있다.  이젠 남녀 사랑마저도 물신주의의 노예가 되는 느낌이다.  사랑을 논하노라니, 아니 때마침 가을 이어서인가 보다. 젊었을 때 애창하던 유행가 가사가 문득 뇌리를 스친다. 김상배 작사·작곡인`날이 갈수록`이라는 노래가 그것이다.  `가을 잎 찬바람에/흩어져 날리면/캠퍼스 잔디 위엔/또 다시 황금물결/잊을 수 없는 얼굴 -생략-`이라는 이 노래 가사를 가만히 입속으로 흥얼거리노라니 어느 문헌에서 읽은 내용이 퍽 인상 깊다.  이 노래는 김상배라는 대학생이 지은 노래란다. 그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보니 사랑했던 여자가 변심, 딴 남자 품을 찾았단다.  이 후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이곡을 지었다고 했다.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이 노래는 최인호 소설을 영화화한`바보들의 행진`의 주제곡이 되기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애조 띤 음색은 물론이려니와 사랑의 이별에 대한 짙은 애소(哀訴)가 내재된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왠지 자신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오며 눈가마저 젖는다. 이는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서 인가보다.  젊은 날 사랑했던 사람은 태양과 같은 존재였다. 곁에 그가 없는 세상은 암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명장의 조각 같은 옆모습을 지녔다.  집안도 좋았다. 훗날 그 사람은 공직자로서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두뇌도 명석하며 포부도 컸었다.  그러나 당시 상류층이었던 남자 쪽 집안에선 우리 집이 부유하지 않다는 이유로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남자는 야반도주라도 해서 함께 살자고 애원 했다. 그 제의에 선뜻 동의 할 수 없었다.`과연 그 생활이 행복할까?`라는 판단에 의해서다.  어느 날 그 남자 앞에서 본의 아니게 선의의 거짓을 행해야 했다. 비서로 재직 중인 회사 업무로 당분간 외국으로 파견 근무를 나간다고 말이다. 그는 이런 필자를 눈물로 붙잡았다.  하지만 이를 앙다물고 매몰차게 뼈를 저미는 이별의 슬픔을 감내했다.  그와 헤어진 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발짝 걷다가 뒤돌아서 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굳어진 채로 두 손을 바바리코트 주머니에 찌른 채, 망연히 땅만 굽어보고 있었다. 그 때 남자의 처연했던 뒷모습을 요즘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날이 갈수록 이별의 슬픔은 심연에 깊은 상흔(傷痕)을 남겼다. 그때마다 스토 부인의 말을 떠올리며 그를 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여자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이렇듯 가을철만 돌아오면 그와의 아름답던 지난날들이 새삼 떠오른다. 나이 탓인가 보다. 전과 달리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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