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정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애도기간이 끝나자 여야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서로를 향한 정치 공방에 몰두하려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는 7일 여권에 국정조사 수용을 요구하면서 "국조에 강제 조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특검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총리 사퇴를 포함해 국정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만났지만 소득 없이 끝났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조속한 국조 실시를 요구하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수사 상황을 봐가면서 논의하자"며 일축했다. 윤 대통령도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정히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총리 경질까지 원하는 야당의 요구에 선을 긋고 기존의 `선(先) 진상규명, 후(後) 인적쇄신` 방침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외치면서도 조사방식조차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시작부터 밀리면 안 된다`는 정치적 계산과 상호 불신 탓이다.  여권은 민주당의 요구가 이번 참사를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을 떨어트리고 총선 심판론 이슈로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 측근 수사로 인한 정치적 수세에서 벗어나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민주당은 여권이 궁색한 핑계를 대며 당장의 책임 회피와 함께 정국주도권 잡기를 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이 경찰의 `셀프 수사`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정조사 요구를 거부하는 것에는 참사의 진실을 은폐,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이해와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때일수록 여야는 상대의 처지에 서서 한 발짝 양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여권은 국민의 공분을 사는 경찰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을 비롯한 지휘계통에 대해 보직 해임과 자진 사퇴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사태 수습의 첫 단계라는 의견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래야 `셀프 조사`라는 국민의 불신을 털고 정부 진상조사 및 그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국조를 요구하기 전에 `셀프 수사` 논란이 과거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탓도 있음을 자성하고, 이런 법적 미비에 대한 해법부터 제시하는 것이 옳다.  지금 여야에 주어진 일은 재난의 정쟁화가 아니라 진상 규명과 국가 안전시스템 정비를 위해 초당적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다. 정부도 단호하고 과감한 인사조치로 조직 쇄신에 나서는 것이 조속한 사태 수습과 국민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는 길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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