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하고 회비와 제복비를 내고 옷을 받아 집에 와서 입어보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니 얼마나 멋있는지. 그 제복을 입고 등교할 모습을 상상하니 그날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에  모자도 쓰고 흰 장갑까지 끼고 풀 버전 복장으로 마당에 나서는데 내가 사관생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우쭐해지는지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학교운동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애들이 전부 나의 복장으로 시선이 집중됐다. 모두들 “우와! 무슨 옷이고? 군복 같다”며 난리였다.   그때 보이스카우트는 전교에서 20여 명 미만인 것으로 기억되며 내가 보이스카우트 도반장을 맡았다. 보이스카우트의 선서구호인 “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 다음과 같은 조목을 굳게 지키겠습니다. 믿충도우예친순쾌근용순경”이라는 12가지 수칙의 앞머리 글자를 힌트로 해서 다 외우기도 했다.     그 이후로 보이스카우트는 항상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배워서  은근히 남을 의식하게 되고 불편한 감도 있었지만  자랑스럽기도 했다.    여름 방학 때 보이스카우트 연맹에서 주최하는  엄청난 규모의 야영대회가 공설 운동장 숲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야영장 캠프 경험과 텐트 생활을 해보게 되었다.    각 학교 별로 다 모이니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과 인솔 선생님, 도우미로 같이 온 엄마들과 한여름 공설 운동장 숲속에서  일주일간의 페스티벌을 했는데 그 경험이 내 평생 머리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학교에서는 지원자가 많지 않아 10명 미만이었다. 늘 깡촌 시골 생활에서 도시 사람들의 공간에 들어가니 너무 설레고  여러 군상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군것질 하는 게 꼭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보이스카우트 연맹에서 주최했기에 일주일간의 다양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은 마치 환상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다양한 악기연주도 구경하고 시내에 있는 학교에서  각각 준비한 장기자랑과 연극도 있었고, 마술쇼도 처음 보았고 남녀혼합 합창곡, 고적대 퍼레이드 등등..    마술 쇼 중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있었다.  어떤 물건을  기계에 넣으면 그 물건이 자라서 크게 되어 나오는 요술 상자가 있었다.  그 상자 안에 여러 가지의 물건을 넣으면 모든 것이 완성되어서 나오기도 하고 또한 식물 같은 건 다 자라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그 마법사 아저씨가 아기 인형을 집어넣었는데 “자! 여러분, 이 인형이 들어가면 인형이 어떻게 자라서 나올지 궁금하시죠?”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   우리들은 기대로 잔뜩 긴장하면서 물건이 나오는 쪽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여러분! 아주 멋지고 잘생긴 커다란 인형이 나올 겁니다. 인형을 누구를 드릴까요? 이번 야영대회에서 제일 우수했던 대원에게 이 상품을 드립니다!”고 했다.   “와아! 대빵 큰 인형 상품으로 받으면 진짜로 좋겠다 그자?”하면서 서로 기대에 찬 얼굴로 쳐다보는데 “하나! 두울! 세엣!” 동시에 다 같이 함성으로 외치니 음악소리와 함께 튕겨 나온 것은 남자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우린 순간 깔깔대고 웃으며 함성을 지르고 있는데 가까이 걸어오는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아닌가. 바로 우리학교 인솔교사로 오신  담임선생님이었다.    우린 순간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진짜 그날 최고 대원들은 우리 학교 학생이 된 것이었다. 왜냐면 그 큰 인형이 우리 선생님(서예가 덕봉 정수암 선생)이었으니까.   마지막 날 밤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도 처음 보게 되었다. 마을에서 밤에 불을 자주 피워 봤지만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로 멋있고 운치 있는 불이었다. 모두 둘러앉아서 건전가요를 부르며 일주일간 일정을 되돌아보며 여러 가지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지막 행사가 끝이 나고 이튿날 학교 운동장에 집결해서 해단식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 기운이 없고 힘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일주일간 같이 지냈던 동료들과의 헤어짐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보고 싶어 홀로 방에서 엄청 울었다.    저녁에 부모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 희야, 재밌게 놀다 왔나?”하셨다. 대답은 못하고 엄마 품에 안겨 그냥 울기만 했었다.   “우리 희야, 아이들과 헤어지니 마이 섭섭했는갑네. 괜찮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끼다”하시면서 나를 토닥토닥 두들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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