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회사에서 목이 잘린 사내가 방구석에 처박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그것도 지겨워지자 책꽂이에서 `벽암록`이라는 어려운 책을 꺼내 보았는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나옛날 마조 선사라는 분이 나이 들어 골골하는 신세가 됐는데 그 절 원주가 찾아와 "요즘 법체 청안하신지요"라고 문안하자 선사는 웃으면서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야"라고 대답했다나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늙은 호박처럼 쭈그러진 암자 노스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스님은 무심한 듯 눈을 감고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까지 살면 더 좋고"라고 말해주었다나그는 섣달그믐 밤 문밖으로 나서다가 찬바람 불어 와 호롱불마저 꺼져버린 듯 되레 답답한 생각이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마침 그때 비로드보다 검은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나 -홍사성,`내년에 사는 법`   홍사성의 시를 읽는다.  그의 시들은 불교적 사유의 세계에 깊이 닿아 있어 깨달음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또 한편 그의 시는 난해하지도 않고 자연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도 한다.  그런데 도대체, 마조선사께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했다는 이 말, 이 작품의 주제(내년에 사는 법)이기도 한,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말,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란 무슨 뜻인가?  이승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스승에게 제자들이 "요즘 법체 청안하신지요?하고 던진 질문에 선사께서 답한 이 화두,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야 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과연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까지 살면 더 좋고!"란 막연한 뜻인가?  삶과 죽음의 화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질문과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죽는 날은 언제고 그때의 우리는 어떤 상황일까? 나의 삶은 과연 얼마나 남아 있는가?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생사는 수수께끼다.  마지막 순간, 과연 영혼 따로 육체 따로 혼비백산해서 인간들은 떠나갈까? 홍사성의 시에는 눈물자국 같은 따뜻한 슬픔이 비친다.  오늘밤에도 밤하늘엔 초승달이 새로 뜨고 별은 총총 새로 돋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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