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정리를 하는데 서랍 안쪽에 본보기그림과 거기에 칠할 물감만 몇 개 제공하는 그림키트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취미였던 그림그리기를 꾸준하게 하더니 이젠 작가 반열에 들어 활동하는 친구가 보내온 전시회 사진을 보며 부러운 마음에 흉내라도 내 보려고 사 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나 봅니다. 그럼 그렇지, 재능 없는 사람이 흉내조차 제대로 못 내구나 하며 자조의 웃음이 절로 납니다. 아무나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는 공통으로 벽 여기저기에 삐뚤삐뚤하게 색색으로 그어진 선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자람에 따라 선은 어느새 동그라미가 되고 또 어느새 동그라미에 눈, 코, 입과 몇 가닥의 머리카락, 동그란 몸통에 바로 달린 손과 손가락이 생겨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적인가 봅니다. 거실이나 안방 벽에 가득 그려진 온갖 형태의 낙서를 보며 부모는 혹시 자기 아이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건 아닐까하고 은근히 기대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의 본질은 모방(imitation)과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벽면에 그려놓은 아이의 낙서도 예술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입니다.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들소 그림과 우리나라 반구대 바위에 새겨진 많은 고래 그림도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냥한 결과물들을 모방하여 동굴 벽이나 바위 면 등 자연적 화면에 공동체의 수확물을 재현한 기록물일 것입니다. 이렇게 소박한 의도로 시작된 예술이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한 수준의 작품으로까지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작가 자신이 경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정을 표현의 매개인 선, 형태, 색, 동작, 언어 등을 이용하여 감상자에게 전달하여 감상자도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톨스토이, 범우사). 사람이 자기가 경험한 감정을 타인에게 옮길(infection) 목적으로 재차 이를 자기 속에 불러일으켜(arouse), 일정한 외면적 부호로 표현(transmission)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감상자에게 작가의 구체적 감정을 경험하도록 `감염(infection)`시키는 정도는 감정의 독창성, 표현하는 감정 방식의 명확성, 예술가 자신의 성실성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중 예술가의 성실성을 가장 중요하게 들었는데, 성실성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예술가 자신이 체험한 힘에서 오며 그 힘이 감상자가 예술가와 공감하고 또 다른 많은 감상자들과 공감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진짜 예술을 만든다고 합니다. 진짜 예술은 공감의 보편성이 크다는 말이지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오윤, 홍성담 등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미술과 민중의 소통을 앞세운 민중미술 운동이 일어납니다. 민중미술은 현실 사회의 모순에 침묵하는 기존 예술계의 관행을 반성하고 미술과 대중의 소통, 현실 비판과 사회 변혁을 지향하며 기득권층과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작가들은 그림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시위 현장에 직설적인 내용의 걸개그림으로 참여하는 등 민중과의 소통과 일체감을 추구했습니다.  이후 군사정권 종식과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민중 미술도 독재 종식과 민주화라는 주제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어 노동, 생태, 인권, 대중문화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민중미술은 서구에 대한 무비판적 추종을 비판하며 주체적 문화 창조와 예술의 현실 참여를 적극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인정받습니다.  일전에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 민중미술 전시회가 국회 사무처에 의해 강제 철거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전시회는 작가 30여 명의 정치 풍자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었으나 철거 측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행사에는 국회 회의실이나 로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규를 들어서 장소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을 고발하는 고야의 그림 `거인`을 패러디하여 대통령 부부가 나체로 칼을 휘두르는 그림, 대통령을 바바리맨, 무당 등으로 표현하는 그림 등 전시 예정 작품의 일부가 정치 풍자 수준을 넘어 국가 원수에 대한 인신 모독을 담고 있다고 철거의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전시회 주최 측과 일부 야당 국회의원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거세게 반발하며 논란이 생겼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그림들이 감상자들에게 어떤 감정을 감염시키는지는 실제 전시회를 둘러보고야 언급할 수 있겠지만 언론 지면을 통해 본 몇몇 그림에서 승화되지 못한 증오와 야유와 폭력적 분노가 느껴진 것은 작가의 그러한 감정이 나에게도 점염(漸染)된 때문일까요?  다시 톨스토이로 돌아가서, 이 위대한 작가는 훌륭한 예술이란 만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전하는 보편적 예술이라고 요약하고, 나쁜 예술은 `무익하고 해로운 일에 귀중한 인명을 희생시키고, 아이들과 민중의 사상 속에 혼란을 일으키며, 미의 이상(理想)을 쾌락에 두고 이에 도덕적 요구를 고려하지 않는, 해로운 감정(미신, 거짓 애국심, 음탕함 따위)을 감염시켜 사람을 타락시키`는 유해한 영향을 인류에게 끼칠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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