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 가냘픈 몸매를 지닌 사진 한 장이다. 표정이 카메라를 의식한 듯 왠지 부자연스럽다. 여고 3학년 때 다니던 배우 학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시절만 하여도 카메라를 쉽사리 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한 포즈를 취하곤 하였다.  이런 몸짓도 점차 카메라 촬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배우 학원 수업에 의해서다. 학창 시절 어머니 몰래 모 배우 학원에서 연기 공부를 할 때 일이다. 처음엔 카메라 앞에서 주춤 거렸다. 다름 아닌 빨랫줄에 빨래를 너는 시늉을 해보라는 강사 말 때문이었다.  이런 필자를 본 강사는 연기자는 비현실 속에서도 현실처럼 생각하고 상황에 몰입해야 대중들의 호응을 얻는다는 말을 일러줬다. 하긴 `주어진 상황을 통하여 인물 분석 및 창조하여 관객 앞에서 드러내는 것이 연기`라고 백과사전은 이르고 있다.  요즘 지난날 배우 학원 강사가 건넨 말이 새삼 떠오르곤 한다. 이는 지난 시간 코로나19의 터널 속에 심신이 갇혔던 탓인가 보다. 우울감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 뇌도 이를 진짜 웃음으로 인식한다고 했던가. 헛웃음이라도 한바탕 웃고 싶은 이즈막이다. 가족들 앞에선 허허로운 속내를 감춘 채 행복한 척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야말로 연기를 한다고나 할까.  이런 필자에게 활력을 안겨주는 게 있다. 음악이 그것이다. 감미로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을 듣노라면 허공에 한껏 매달렸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이로보아 음악은 인간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힘들고 우울 할 때, 혹은 하늘을 날을 듯 기쁠 때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게 노래 아니던가.  특히 우울할 때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눅눅했던 마음이 다소 까슬까슬 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애수에 젖은 노래를 들으면 필자 같은 경우 과다한 감성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물기가 돈다.  어디 이뿐인가.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마치 금세 겪은 일처럼 눈앞에 또렷이 그려지기조차 한다. 또한 까맣게 잊힌 추억을 소환 하는 게 음악이 지닌 힘인가 보다. `봄비`라는 유행가를 들으면 젊은 시절 소리 없이 연우(煙雨)가 내리던 어느 봄날 일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한 후 슬픔에 겨워 봄비를 흠뻑 맞으며 무작정 거리를 거닐었다.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그날 뼛속깊이 스미던 찬비의 시린 감촉과 이별의 슬픔이 생생히 되살아나 가슴이 뻐근하도록 저리다.  `눈이 내리 네` 라는 유행가 역시 추억에 함몰케 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 날, 서울 명동 거리를 사랑하는 연인과 거닐 때 레코드 가게에서 울리던 노래여서다. 이 노래를 듣노라면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여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싸이기 예사다.  `사랑 했어요`라는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짠하다. 필자를 짝사랑해 쫓아다니던 남학생이 생각나서다. 지금도 옛 집 골목길에 서 있노라면 그 애가 다시금 찾아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성일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추모 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어떤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지난5.18 광주 항쟁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 모습이 떠올라 비장감마저 감돈다. 애국가 또한 그 노래를 들으면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잖은가.  노래를 논하노라니 최근 읽은 대니얼 J 레비틴 저서 `노래하는 뇌`에서 주장한 언술이 인상 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악이 인간 뇌의 발달과 진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표현했다. 대니얼 J 레비틴의 언명에선 벗어날 언급일지 모르겠다.  필자 역시 음악으로부터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음악을 들으며 산책 및 운동을 하노라면 바짝 메말랐던 가슴에 습윤(濕潤)이 서서히 번지고 있잖은가.  평소 팝송 및 록도 애창하지만 시대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유행가도 자주 부른다. 어떤 노래 가사는 매우 시적(詩的)이기도 하여 한 자 한 자가 심금에 부딪친다. 18번(?)인 심수봉 가수가 부른 `백만 송이 장미`다. 이 노래는 흡사 달디 단 초콜릿과 같다.  입 속으로 가만가만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삶에 지친 심신이 위무 받아 절로 행복감이 충만 되는 기분이다. 그래 이 노래를 부르는 한 이젠 더 이상 식구들 앞에서 행복을 가장한 웃음을 연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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