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사퇴가 있은 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통화 끝낸 뒤 즉시 전화기를 꺼두라는 권유였다. 혹, 총리지명 러브콜이 올지 모른다는 농담이었다. 우린 한참 웃었지만 그 뒷맛은 씁쓸했다. 이런 혼란은 없었으면 좋았을 일이다. 나라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민족성에 관한 고찰이다. 우린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성찰로 시간을 거슬러보았다. 우리에게 조국은 모국이다. 태어나 자라고 생을 마감하는 이 땅을 어머니의 품으로 여기며 존중한다. 남의 어머니가 훌륭하다고 목을 빼고 부러워하거나 바꿀 수는 없다. 못난 나의 어머니 대신 나 하나라도 열심히 바르게 살아야지 작심해야 한다. 그건 큰 틀의 숙명인 것이다. 세상사 모든 일이 좋은 것은 잊히고 나쁜 것은 오래 남는 법이다. 어느 쪽의 시각을 갖는 건 개인의 자유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이해한 다음 평가하고, 자성의 기회를 반면교사 삼는 것이 마땅하다. 내 못난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하거나, 안면에 침을 뱉거나, 돌아서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모국을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자식의 도리이기 때문에. 세계 속의 우리는 결코 일등 국가가 아니다. 역사를 평가하는 시각은 나와 남이 다르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보는 폄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살피는 일에는 애정이 있어야한다. 그게 애국심이다. 무조건 우리가 잘난 걸로 착각하는 오만도 문제지만 자조에 젖어 스스로를 하등국민으로 여기는 오류는 금물이다. 그리고 정치적 역사의 이면에는 민초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의 실록을 간직한 우리는 세계에서 그 예가 없는 기록문화를 가지고 있다. 유일의 왕조체제에서 입에 쓴 일도 빠짐없이 작성한 선비의 올곧은 문화다. 서구의 과학적 문물을 배척했다지만 우리 조상들은 정의를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우리의 한글은 가히 세계 제일이라 자부해도 좋은 아름다운 문자다. 일본에도 없는 우리만의 것이다. 한 나라가 완전한 국가임을 증명하는데 자국의 문자는 독립된 큰 자산이다. 천체연구와 물 관리, 독일의 구텐베르크인쇄술보다 앞 선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문화 등 자랑스러운 역사를 일군 많고 많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근대사를 통 털어 정말 있어서 안 되는 정치사들이 있다. 하지만 극악무도한 강도짓인 남의 나라 침략의 추억이 없어서 아름답다. 가난하여 무지한 미개의 선조들이 안쓰럽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섬나라 일본이 대륙을 향한 전쟁의 기지로 우리를 점령했고, 그 발판으로 삼은 개발이었다. 세계를 향한 개척이 더디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기에 침략자에게 고마워할 이유가 없다. 일제가 식민지 우리 사회의 기간사업을 위해 쓴 돈이 당시의 화폐로 5억엔 내외다. 그들이 무매한 우리로부터 착취해 간 물자와 돈은 500억엔 내외라고 한다. 저들의 지배는 남고도 남는 장사였다. 그래서 일본이고, 우리는 아픈 역사를 잊어서 안 된다. 단순히 금전적 액수로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시간적 자산을 강탈한 배상은? 그런 와중에도 몇 몇 매국노를 제외한 대다수 우리 민족은 정신줄을 놓고 살지 않았다. 내 조상의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후손들이 고개를 들고 산다. 개개인의 삶도 역사의 흐름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를 쓰고 있는지 깊이 성찰할 일이다.이 화 리소 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