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참 이상한 것이 있다여자란 여자들은 모두가 다남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내가 그들의 남편이며 애인이며아버지이며숙부이며아들이며오빠가 되어 살고 있다기쁘다그 가운데서도애인이 될 때가 제일 좋다아물지 않는 상처에서도 향기가 난다 -정진규의 시 '여자들' 여..
잠을 잘 자려면 밤에는 불을 어둡게 하라고들 합니다. 빛이 잠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커피는 빛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도, 오후에 한 잔만 마셨을 뿐인데 밤새 뒤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빛과 커피는 어떻게 둘 다 잠을 막는 것일까요..
책을 몇 권 대출하려 시립도서관에 들어가다가 입구에 세워진 홍보게시판의 글씨에 시선이 갔습니다. ‘읽고 쓰기 좋은 가을’가을을 표현하는 다른 어떤 말보다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여름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더위는 사람이 집중력을 가지지 못..
"어떡해" 우리말 가운데 이처럼 짧으면서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말이 또 있을까.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겼을 때, 너무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무심코 "어떡해"를 외친다. 이 짧은 감탄사에는 놀람과 당황, 기쁨과 감동이..
혼자 밥을 먹거나 불 꺼진 방에 홀로 들어서는 순간, 불현듯 마음 한구석에 스산한 바람이 스칠 때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짝을 찾아 다정하게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나만 홀로 외딴섬에 남겨진 것 같은 고립감. 누군가 곁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
일본 여행을 가서 온천에 들어서면 달걀 썩는 냄새가 훅 들어 옵니다. 황화수소(H₂S) 때문입니다. 정화조 작업 중에 인부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에 늘 따라붙는 유독가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기체를 체내에서 직접 생산해 씁니다. 뇌에도 있고 혈관에도 있고 장에도 있..
가을밤 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은 자신의 크기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별들이 침묵 속에서 빛나고, 그 사이 작은 행성 하나가 우리 삶터다. 그 작은 땅 위에서도 우리는 하루의 걱정을 우주의 중심인 양 끌어안고 산다. 더 가져야 안심하고, 더..
지난 9월 17일 저녁, 대릉원 옆의 한옥 문정헌에서 문학토크가 열렸다. 올해 열다섯 번째 시집 『새가 울고 갔다』를 펴낸 여든 넷의 시인이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후배 문인들이 이어서 읽었다. 필자는 그 자리를 진행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저녁 행..
"공천은 당이 한다. 그러나 표는 주민이 던진다."박형수 국회의원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새겼어야 했던 말이다.의성·청송·영덕·울진. 국민의힘의 전통적 강세지역이지만 이번 선거는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가장 선명한 장..
남들은 대충 지나치는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나 공기의 흐름을 신기할 정도로 먼저 포착해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사물의 미세한 결을 세공하듯 읽어내곤 하지요. 그런데 이 감각의 안테나가 지나치게 팽팽하게 켜져 있으면 마음은 쉽게 지치고..
대한민국 부동산 세제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주택 수가 몇 채인지, 조정대상지역인지, 공시가격 현실화율과 공제금액이 얼마인지 따지다 보면 전문가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국민의 불신은 깊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세금 폭탄을 맞지 않을까’라는 조..
삼국유사에는 특별하게 성기의 크기를 적시한 경우가 있어 눈길을 끈다. 유사는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사기와는 다른 이적들을 소개하면서 삼국의 통일과 흥망성쇄를 상징적인 이야기로 풀이하고 있다. 신체의 크기를 과장되게 기술한 것 역시 신이적인 인물이라는 점과 강력한 ..
며칠 전 뉴스를 접하는 순간, 눈을 의심해야 했다. 다름 아닌 어느 유명 문인이 자신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둔갑시키기 위하여 서점에서 다량 사재기를 했단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문인으로서 참으로 낯이 뜨거웠다. 작가들은 독자들이 구매하는 자신의 저서 수량에 따라 작품..
아내는 돈을 벌려고 전통시장을 누비는데나는 돈을 쓰려고 먹자골목을 어슬렁거린다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워서쓰는 것도 버는 장사 밑천이라며 얼버무린다그럭저럭 사는 일에 매몰되어 허송세월하는 줄도 모르는 밥통이다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농담을 신봉한다돈을..
단경왕후는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 씨의 딸로 태어나 1499년(연산군 5년) 성종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혼인하였고,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왕비의 친할아버지 신승선은 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사위이자 연산군의 장인이었으며 아버지..
영일만횡단대교가 다시 포항의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포항시와 지역 정치권이 해상노선 추진에 뜻을 모으면서 오랜 숙원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다시 커지고 있다.영일만횡단대교는 포항에서 무려 18년 가까이 논의돼 온 대형 SOC 사업이다. 그동안 사업 추진 여부와 ..
화집(畫集)을 들여다보다 노르웨이 출신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그림 ‘절규’에 눈길이 머물러 새삼 전율을 느꼈다. 오래전에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그때보다 훨씬 강렬한 공포감을 안겨주기 때문이었다. 핏빛 하늘, 유령이 튀어나올 듯한 배경, 동그랗게 ..
밤에 어둡게 지내야 한다는 말은 상식이 되었습니다. 취침 전 휴대전화를 멀리하고 침실 조도를 낮추는 일, 심야 편의점 조명이 수면을 방해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낮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 역시 작은 판독실에서 현미경을 ..
1988년 내게는 등려군(鄧麗君, 1953~1995)을 좋아하던 중문과 친구(老朋友)가 있었다. 그해 여름 그 친구가 책을 한 권 읽어보라며 건네줬는데, 제목은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 1937)’ 이었다. 책은 두툼해서 한동안 못보다가..
온다는 귀띔 없이 갑자기 가을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예전에 비해 계절의 변화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계절 변화는 겨울 끝 무렵 태양이 천천히 공기를 데워 봄을 부르고, 자리를 내주기 싫은 여름이 머뭇대는 동안 가을이 슬그머니 잠복해서 초목(草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