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척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큰 도둑이다. 부하가 9천명에 달할 정도로 제후보다 막강한 세력을 가진 무소불위의 도적이며 인육까지 먹었다는 악인으로 춘추시대 노나라의 인물이다.
도척지견이란 옳고 그런 것을 가리지 않고 밥을 주는 자에게 무작정 굴종하고 맹종하는 얼뜨기를 칭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도척의 개가 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지조와 절개의 표상인 백이 숙제는 멍청이가 되고 단종복원을 도모하던 사육신은 죽어 마땅한 인물로 전락하게 된다.이
땅의 충신 열녀는 설자리가 없고 오직 계유정난의 일등공신 한명회와 같은 부류만이 득세하여 생살부로 겁박하고 무오사화를 촉발한 유자광 같은 약사빠른 인물들이 한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혼돈의 시대를 맞게된다.
도척지견이 발호하는데는 법이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법이 무너지면 국법이라도 살아있어 무너지는 사회를 바로 잡아야 함에도 법을 지켜야 할 지도층이 스스로 도척이 되고 도척의 개가 되어 분탕질을 하고 있다.
사법의 불공정을 입증하듯 대형로펌과 떡검에 동조하는 판사까지 어우러져 죽은 자도 살리는 도깨비놀음을 하고 있다. 
 
학자는 학문을 하기 위한 자가 아니라 자리를 위해 학문을 하고 대학은 폴리페서로 간택을 바라는 징검다리로 전락했다. 불의를 스스로 조장하는가 하면 자식을 위한 찬스를 구현하는데는 양심도 기준도 없다.
 
한비자는 유학자는 글로 나라의 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협객은 힘으로 나라의 금령을 어긴다고 했다. 유학자가 오늘날의 대학교수요 협객은 권력을 가진 사회지도층이다. 권불십년은 권력의 덧없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경계를 삼은 이는 고작 손으로 곱을 정도다.
불사이군을 고집한 고려말의 충신들과 세조와 단종에 얽힌 소수의 인물들에 불과하다. 개인이 지조와 소신을 고수하는데는 핍박과 피를 감수해야 하고 십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사회 곳곳에서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도척지견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한직을 떠돌다 승진에서 누락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약삭빠른 처세술이 공직사회의 절대선으로 자리잡게 되지만 이들의 말로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또 민주주의 정착과 함께 음지에서 활동하던 세력들이 경제개발의 단맛을 알게되고 이제는 돈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만사를 주무르고 있다.
 
사마천도 오죽하면 권력은 돈으로부터 나온다 했을까. 돈을 주고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은 지방자치시대의 산물이다. 
 
엽관제를 용인하다 보니 빌붙는 세력이 나타나고 너도나도 잘못임을 알면서도 생존이라는 미명하에 부하뇌동하는 부류가 늘어났다. 
 
또 그들은 그들만의 동질의식을 공고히 하고 부당함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회전문 인사로 공직을 즐기고 있다.
이들에게 사육신의 절의와 공직자의 도리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아계부라는 시에서 도적을 보고도 짓지 않는 개와 쥐를 보고도 잡지 않는 고양이나 새벽이 되어도 울지 않는 닭은 잡아버리는것이 마땅하지만 스스로 회개하여 새로워 질 것을 주문했다. 
 
또 공자는 제자인 자사가 수치스러움에 대해 묻자 방유도곡 방무도곡(邦有道穀 邦無道穀)이라 하여 도가 행해질때는 자리만 차지하고 녹봉이나 받아먹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 수치라고 했다. 
 
공직자 스스로 도척지견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 작금의 상황은 지방자치가 빚어낸 또다른 우리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