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그를 떠올리면 인동초(忍冬草)가 생각난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푸른 잎을 떨구지 않고, 마침내 봄이면 꽃을 피워내는 식물이다. 그는 수차례 죽음의 위협과 투옥, 망명, 납치와 사형선고까지 겪었지만, 마침내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꽃을 피워낸 불굴의 정치인이었다.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권력을 잡은 뒤 그가 걸어간 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보복이 아니라 용서를 선택했다.자신을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넣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그는 사면하고 예우했다. 이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국민 통합을 향한 철학적 결단이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용서는 진실로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다.” 김대중의 용서는 정치적 무기가 아니라,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으려는 치유의 힘이었다.정신의학에서 용서는 단순히 상대의 과거를 풀어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분노를 넘어선 치유이자 내적 자유의 회복이며,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김대중 대통령의 용서 역시 그러했다. 그의 선택은 개인적 보복심을 억누른 정치적 기술이 아니라, 상처를 넘어 국민과 치유의 에너지를 나누려는 실천이었다.또한 그는 오랜 정적 김종필과 손을 맞잡아 DJP 연합을 성사시켰다. 이 선택은 단순한 권력 연합이 아니라, 지역과 진영의 벽을 넘어 분열을 치유하려는 포용의 정치 실험이었다. 국민을 하나로 묶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결정적 걸음이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상징적인 장면은 평생을 맞섰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화해였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산업화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민주주의 억압을 비판하는 균형 잡힌 태도를 지켰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대통령이 된 뒤 그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지원하며 직접 대구를 찾아 진심을 전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찾아와 “아버지 시절에 큰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을 때, 김대중은 “마치 구원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만남이 아니라, 한국 정치가 과거의 상처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 화해의 상징이었다.김대중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우리는 다시 묻는다.오늘의 정치는 정적을 용서하고, 라이벌을 포용하며, 과거의 상처까지 화해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칼이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묶는 치유의 손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