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광복절, 우리는 두 가지 기억을 함께 맞았다.
민족의 해방을 기리는 광복 80주년과, 따뜻한 품격을 남기고 떠난 육영수 여사의 서거 51주기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그날, 역사의 빛과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다시 그녀를 떠올린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따뜻함’과 함께 기억된다.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육 여사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늘 주변의 그늘을 먼저 살폈다.1967년 연말, 삼청동 총리공관 송년회에 불참한 이유가 보육원 방문 때문이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집사람은 보육원에 가느라 못 왔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말은, 그녀가 늘 누구를 향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그녀는 ‘양지회’를 조직해 전국의 나환자촌을 돌봤다. 직접 환자들의 손을 잡고 고구마를 나누며, 낙인의 두려움보다 공감의 용기를 택했다.정신의학적으로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다. 공감의 반복적 실천이었다.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마음의 무게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며, 이것이 쌓여 한 사람의 품격이 된다.육 여사의 삶은 봉사만이 아니라 검소함으로도 드러났다. 서거 후 유품을 정리하던 이들은 기워 입은 속옷을 보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청와대는 항상 중류 살림을 하자”던 그녀의 생활신조는 청렴과 절제를 일상으로 만든 증거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회고처럼,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는 말과 행동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겸손 또한 그녀의 품격을 지탱한 힘이었다. 권력을 즐기는 행세로 국민의 원성을 사지 않으려 늘 스스로를 절제한 그녀는, 오만하게 보일까 봐 행사장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고 곧추앉아 있었다. 그 태도는 국민 앞에서 자신을 절제했던 그녀의 일관된 자세를 잘 보여준다.무엇보다도,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분별이 있었다. 국가의 대소사와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한 영역이라 판단해,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권력에 기대지 않았던 그 태도가 그녀의 겸손을 더욱 빛나게 했다.그러나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은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북한 공작원 문세광의 총탄에 육 여사가 쓰러진 것이다.국가적 기쁨의 날은 순식간에 비통의 순간으로 바뀌었고, 국민은 사랑받던 ‘국모’의 죽음을 충격 속에 마주해야 했다. 그 상실은 한 시대를 깊은 슬픔과 허무 속에 잠기게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녀를 단순한 희생자로만 기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품격과 따뜻함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그 인품은 정치적 입장과 이념을 넘어, 누구에게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박 대통령에게 저항하던 이들조차 육 여사의 인품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1974년 영결식에서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기도했다.“그분이 우리 마음에 심은 평화와 사랑의 씨가 자라 그 꽃을 피우게 해 달라.”훗날 그는 “국모(國母)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분”이라 기록했다.육 여사만큼 온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대통령 부인의 품격을 온전히 보여준 인물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더욱 그녀를 그리워한다.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가 남긴 메시지다.“말보다 실천, 분열보다 화합, 사익보다 절제.”이는 과거의 미덕이 아니라, 오늘 한국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마음의 처방전이다. 정치적 갈등과 불신, 세대와 계층의 분열이 깊어질수록 국민의 마음은 병든다.정치가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탱하는 토대라면, 지도자의 언어와 태도 하나하나는 사회 전체의 안정에 직결된다.정신의학의 시선에서 보면, 정치가 갖추어야 할 가장 강력한 자원은 공감이다. 공감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시키고, 분열된 집단을 다시 잇는다.정치의 언어가 공격과 배제에 머물면 국민은 불안과 우울에 잠식된다. 그러나 지도자가 보여주는 품격과 절제는 국민 전체의 정신적 면역력을 키운다.육영수 여사의 삶은 치유적 리더십의 상징이다.작은 자리에서 손을 내밀고, 권력보다 공감을 택한 그녀의 태도는 오늘의 정치에도 여전히 길잡이가 된다.정치를 치유한다는 것은 곧 국민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육영수 여사가 남긴 씨앗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 씨앗이 꽃으로 피어날 때,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따뜻한 품격을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