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만큼 지루한 게 없다. 특히 놓친 버스나 기차를 기다릴 때 시간은 더더욱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다. 필자역시 기다림엔 인내의 한계를 느끼기 일쑤다. 성미가 급해서일까. 이런 성향은 식당에서도 그 기질이 표출된다.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다급히 재촉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평소 계획한 일이 당장 해결 안 되면 조바심을 낸다. 젊은 날엔 이 급한 성격 때문에 손해 아닌 손해를 보았던 일이 부지기수다. 어떤 사안에 느긋함을 지니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걸핏하면 서둘렀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 꿰어 쓸 순 없을 터인데 성급한 마음 탓에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찌 보면 조급증과도 일맥상통하는 행위랄까. 사실 프랑스 마을 단위 특등 급 포도밭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에서 DRC가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도 오랜 시일 포도를 숙성 시키는 탓에 세계에서 가격이 최고로 비싸지 않던가. 이는 기다림의 결과이다. 한편 요즈음은 지난날과 달리 기다림에 익숙해졌다. 식당에 가서도, 환자가 많은 병원에서도 느슨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리곤 한다. 그러고 보니 기다림에 대한 추억이 있다. 학창 시절 순영이라는 머슴애와 약속한 일에 의해서다.    여고 1학년 때 순영이는 우리 집 이웃에 살았다. 갑작스런 집안의 영락(零落)으로 살던 집마저 빚에 의하여 처분됐다. 그러자 우리 가족은 잠시 서울 중량 천 뚝 위에 지어진 판자 집에 살아야 했다. 이 때 순영이네는 판자촌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순영이는 필자와 같은 또래였다. 그 애랑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레 친분이 쌓였다. 그 애는 그 당시 헤르만 헤세의 소설집과 고전 등의 책읽기를 즐겼다. 자신이 다 읽은 책을 내게 자주 빌려주기도 했다. 그 아이의 영향을 받아서 필자 또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심취 하였다. 그래 틈만 나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유리알 유희』, 『게르트루트』 등의 작품을 탐독 하곤 하였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그 애랑 빵집에서 마주 앉았다. 그 때 순영이는 필자에게 지금 이 가난의 고통을 이겨내고 먼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고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며 독서의 중요성도 일깨워 주곤 하였다.    그런 그 애 집이 겨울 어느 날 이사를 했다. 이사를 가기 전 그 애는 그날로부터 딱 10 년 후 낮 12시에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 말에, “ 진짜? 10 년 후에 꼭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으로 나올 거야? 그렇다면 맹세해” 라고 하자 그 애는 손가락까지 걸며 굳은 약속을 했다. 얼마 후 중량교 천 주변 동네 무허가 판자 집들이 철거가 됐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살던 집이 부서지자 우린 엄동설한에 갈 곳을 잃었다. 임시로 뚝 위에 천막을 치고 지내야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폭설이 내려서 눈이 무릎까지 쌓이던 날이었다. 어디선가 먼 곳에서 필자 이름을 부르는 그 아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뚝 위엔 부서진 집들로 말미암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필자는 그 아이한테 우리 집이 처한 처참한 모습을 보이는 게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애써 두 귀를 막고 그 소릴 외면했다. 순영이는 한동안 눈 속을 헤매며 필자 이름을 애타게 목 놓아 부르더니 지친 듯 더 이상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자연스럽게 그 아이로부터 소식이 단절됐다. 드디어 10 년 후 12월 20일 낮 12시였다. 비록 그동안 서로 연락은 두절 됐었지만 설마 지난날 약속까지 잊었으랴 싶었다. 그래 흰 눈이 펑펑 내리던 그날, 필자는 순영이와의 10 년 전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도착한 필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순영이를 기다렸다. ‘지금쯤 순영이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혹시 나를 몰라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잠기며 행인 얼굴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살폈다. 연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2시간 가까이 기다렸건만 그 애는 영영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애는 10 년 전 필자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했다. 이즈막 지난날을 돌이켜보노라니 문득 진성 가수의 ‘안동역에서’라는 노래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새벽부터 오는 눈이/무릎까지 덮는데/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오지 않는 사람아< 하략>’ 순영이와의 학창 시절 약속은 위 노래 가사처럼 허무한 맹세가 된 셈이다. 동물은 약속을 할 수 있거나, 지킬 줄 모른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약속을 이행 할 수 있잖은가. 그래서인지 사람 됨됨이의 잣대를 언행일치에 두고 있다. 부득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을 못 지킬 경우도 있긴 하다. 가급적 이런 상황에도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한다. 가끔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을 지나칠 때면 왠지 감회가 남다르다. 젊은 날 그곳에서 언 발을 구르며 순영이를 기다렸던 일이 생각나서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리다.    반면 뒤돌아보니 그 날의 가슴 아픈 기억도 ‘젊은 날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추억의 한 순간이었노라’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 이런 서러운 자위로나마 그 애가 지키지 못했던 언약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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