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벼워지는 세태 탓인지 ‘홀로 깊어 열리는 시’,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 ‘세상 뒤집어보기의 시’로 평가되는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1931~2015)의 시를 새삼 들여다보게 된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든가 ‘이미지 구사의 귀재’, ‘비유적 언어 구사의 마술사’라는 평가도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시는 가라앉듯 ‘고요한 깊이’를 거느리며 촘촘하게 다가오면서도 세상을 뒤집어 그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경이감과 전율을 안겨준다. ‘낯설게 하기’를 통한 언어의 행진이 신선한 충격으로도 다가온다. 특히 시 ‘서곡’에는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또는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 탐구가 관류한다. 잠자며 꿈꾸다가 깨어난다면 상승 이미지로 그려지게 마련인데, 그는 그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상식을 여지없이 낯설게 만들어 긴장감을 일으킨다.
첫 행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라는 문맥에서 보듯,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이 위로 향하는 게 아니라 아래로 떨어지는 하강과 낙하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시인은 그 과정의 숨 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가 돼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나아간다.
또다시 그 풋풋함 속으로 나아가면서도 상승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강의 이미지를 강화하며 구사한다. 그 사이 사물들에는 강렬하게 불이 붙고, 종달새가 퍼덕이는 상승 이미지가 구사되지만, 여행자는 위로 시선을 주지 않고 나무들의 거대한 뿌리 체계와 지하의 샹들리에 가지에 눈을 가져간다.
시인의 눈길은 이같이 하강하고 낙하하는데도 땅 위엔 녹음이고, 초목들이 열대성 홍수를 이루며 팔을 치켜드는 상승을 거듭하고, 펌프의 박자도 안 보이지만 동적인 이미지를 거느리는 느낌을 안겨준다. 하지만 여행자는 ‘여름 쪽으로 하강’하는 등 그 강도가 더해지면서 ‘여름의 눈부신 분화구’와 ‘녹색 시대들의 수갱’ 속으로 낙하하는 데까지 이른다.
게다가 이쯤에서 상황은 또 다르게 뒤집힌다. “시간의 눈 깜빡임을 관통하는/수직 낙하 여행이 멈추고,/날개가 펼쳐져/밀려드는 파도 위 물수리의 미끄러짐이 된다.”고 하며, ‘청동기시대 트럼펫의/무법 선율’과 부딪히고, 마침내 ‘바닥없는 심연 위에 부동으로 걸’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서곡’에는 하강 이미지가 지배적이며, 그 언저리에는 불, 물, 녹음의 이미지 등 숱한 군소 이미지들이 강한 양상으로 끌어들여지면서 그다운 상상력의 세계를 한층 탱탱하게 만드는 효과를 증폭시킨다. 또한 돌은 햇볕에 따뜻해지고, 여행자의 손은 그 돌을 움켜잡듯, 하루의 처음 몇 시간 동안 의식은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몇 시간이나 끊임없이 하강과 낙하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나무 아래 서 있었으며, 그런 죽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돌진’ 후에 비로소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에 닿고 있다. 시인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죽음의 소용돌이에 계속 휩싸여 있었으며, 그 소용돌이를 일탈한 뒤에 낙하한 자신의 머리 위에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펼쳐지기를 다시 꿈꾸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이미지 구사와 비유적 언어 구사는 분명 마술에 다름 아닌 것 같다.
다른 시를 보면 ‘지하의 눈’으로 지하는 물론 지상과 천상의 모든 사물을 겹쳐서 바라보는 신비주의로 나아가는가 하면(‘땅을 뚫고 바라보기’), “학생이 밤중에 책을 읽는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읽고 또 읽는다./시험이 끝나면 학생은 다음 사람을 위한 계단이 된다./힘든 길, 도달한 자는 먼 길을 가야만 한다.”(‘아프리카 일기 중에서’)라고 묘사되듯,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로워지기 위해 안개 속과도 같은 세상이라는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 가 닿으려 한 길에 힘들게 닿게 되면 다시 시작되는 또 다른 길이 어렵게 열리게 마련이지 않은가.
트란스트뢰메르가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언제나 신비스러운 ‘먼 길’ 위에 놓이며, 먼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만 하는 게 숙명일까.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은 안개 너머의 세상을 보는듯한 신비주의의 빛깔을 띠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일상의 사물들과 자연의 자질구레한 것들에 눈길을 깊이, 날카롭게 들이대는 특징을 보탠 ‘거시적 미시주의’ 시인이라는 점에서 깊이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