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글도 넘치는 세상이다. 예전처럼 내가 직접 누군가를 만나 건네는 말이 아니라,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 휴대폰을 통한 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하고, 답하기 싫어도 해줘야하는 강요된 일상이다. '발 없는 말'이 아니라 광속도의 말이 인간을 지배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고 했지만 이제는 말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기도 어렵다.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약속이다.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대상을 두고 약속을 하는 순간, 그 말은 상대에게 한 맹세가 된다. 약속의 맹세는 지켜져야 한다. 약속이 잘 지켜지는 이 아름다운 질서는 개인의 신의가 된다.  신의로 이뤄진 사회는 불화를 배제한다.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은 주로 사회지도층이 상실한 신의 때문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서 허무맹랑한 약속을 하거나, 허튼 빈 소리의 변명을 하는 사회는 불신을 키운다. 불신은 날이 갈수록 자라는 특성이 있어서 끝내 사회구성원 간의 불화를 초래한다.  믿음의 신의라는 것은 대단한 결집력을 보인다. 어지간한 잘못도 신용하는 사이에선 용납된다. 그러나 한 번 어긋난 약속으로 잃은 신의는 좀체 회복되지 않는다. 속담의 '상추밭에 똥 눈 개'의 취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주로 약속을 깨는 이들이 변명에도 능하다. 이런저런 자기변호를 하지만 진정성은 충분한 의심을 받게 된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모르는 것은 스스로의 아둔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당사자의 인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불손이며 모독이다. 진심으로 대상을 귀하게 여긴다면 약속은 지키게 되어있다. 대충 수월하게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은 대상이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일 때 가능하다. 그래서 크게 미안하거나 죄송할 필요성을 못 느낄 때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약속을 어길 때 잘 살펴보면 그 관계에서 무시당하는 쪽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능란하게 모독을 주는 경우는 무시해놓고 오히려 피해의식, 운운하는 기망을 하기도 한다. 지키지 않는 약속은 헛소리, 헛말에만 불과한 것이 아니다. 애초 약속을 한 당사자는 이미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는 것을 아는 경우도 많다. 주로 정치인들의 수법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방법일 뿐이다.  아주 교묘한 타산에서 나온 결과이며, 아주 교활한 계획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약속을 쓰레기로 만드는 이들에게 윤리나 도덕을 얘기하는 건 시간낭비다. 단 그런 기회주의자에게 속지 않도록 나를 철저히 단속하는 편이 상처받지 않는 길이다.    일본에서는 명절 전후로 가족집단자살이 흔하다는 얘기를 오래 전 들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빌린 돈을 주로 명절 전에 갚는 것이 예의인데,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때, 일본인은 크게 절망하며 자책한다고 했다. 일본인은 젖병을 들고 있는 만 두 살짜리 아기에게 엄마와 한 약속의 중요성을 단호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독일의 사기그릇회사에서는 디자인에 따라 백년 이백년, 또는 지속적 생산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사장이 바뀌거나 회사가 다른 곳에 넘어가도 그 약속만은 그대로 지켜진다.  그래서 삼백 년 동안 내려오는 문양의 그릇을 지금도 사용한다. 대대로 물려받는 그릇은 세트구입이 아니라 한 개가 깨지면 낱개의 구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그런 약속도 없고, 낱개구입도 불가하다.  위의 두 국가가 탄탄한 경제와 신용사회를 이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약속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국민성, 참 부럽다. 이 화 리소 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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